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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리지 평설 - 국토 평론가 이중환, 사람이 살 만한 땅을 말하다

안대회(저자) | 휴먼인문 | 17,000원 | 2020.12.07 | 340p | ISBN : 9791160805185 | 93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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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리지 평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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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팔도에서 살 만한 곳을 찾아 헤맸던
‘국토 평론가’ 이중환의 발자취와 《택리지》의 행방을 밝히다

18세기 조선의 문인 이중환이 지은 《택리지擇里志》는 당대는 물론 후대의 사대부들이 무수히 읽고 논하고 베껴 쓰면서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실용서로 자리매김한 책이다. 《택리지》는 어디에 사는 것이 가장 좋을지 제시한 부동산 서적이고, 산수가 빼어난 곳을 안내한 여행서이며, 지역의 물산과 교통을 소개한 경제서이자, 지역 전설을 채록한 구비문학의 보고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하지만 몰락한 사대부로서 불행하게 살다 간 저자의 삶에 주목하는 이는 드물었고, 당쟁의 폐해로 인해 조선 팔도에 진실로 살 만한 곳이 없다는 저자의 관점도 제대로 이해받지 못했다. 또한 200여 종에 달하는 《택리지》 사본은 편목과 구성이 제각각이었고, 일제 강점기에 최남선이 새로운 판본을 선보였지만 왜곡된 편집으로 더 많은 오해를 낳기도 했다.
오랫동안 《택리지》를 연구해온 한문학자 안대회 교수는 23종의 선본을 바탕으로 아홉 명의 연구자들과 함께 엄밀한 교감을 거쳐 2018년 《완역 정본 택리지》(양장본, 보급판)를 출간했다. 《택리지 평설: 국토 평론가 이중환, 사람이 살 만한 땅을 말하다》는 안대회 교수가 정본 출간 이후에도 《택리지》를 손에서 놓지 않고 끈질기게 연구한 결과를 모았다.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이중환의 인생 역정, 그로부터 비롯한 문제의식, 수없이 다양한 이본이 나올 정도로 뜨거웠던 관심, 사대부들이 헛소리로 치부하던 민담을 수집해 지역민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으려 했던 이중환의 노력을 가감 없이 담았다. 이 책은 《완역 정본 택리지》를 통해 우리 국토의 아름다움과 도도한 역사를 함께 살펴보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소중한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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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1. 명문가의 기린아에서 당쟁의 희생자로
― ‘국토 평론가’ 이중환은 어째서 《택리지》를 썼는가

 
《택리지》는 조선시대의 가장 대표적인 인문지리서로서 국토의 지리와 당대의 변화를 함께 담은 독보적인 저작이다. 국가가 지리정보를 독점하던 시대에 개인이 지리를 논했다는 점에서도 획기적이다. 하지만 《택리지》의 저자가 왜 이 책을 썼으며 어떤 문제의식을 가졌는지는 그동안 잘 드러나지 않았다. 안대회 교수는 《택리지》를 ‘18세기 인문지리학의 명저’라고 평가하면서 이 책이 사대부 사회에서 쫓겨난 지식인의 자기표현이기도 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중환李重煥(1690~1756)은 오랫동안 고위 관료와 학자를 배출하며 당시 남인南人 당파를 주도하던 명문가에서 태어났다. 24세에 문과에 급제한 뒤 10년 동안 공백 없이 관직 생활을 이어가던 이중환은 경종景宗이 죽고 영조英祖가 즉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역모에 가담했다는 혐의로 심한 고초를 겪는다. 소론少論이 노론老論을 축출하고 노론이 소론에 보복하면서 사화士禍가 거듭되는 혼란스러운 정국이었다. 이중환은 모진 형장을 버티며 무죄를 주장한 끝에 겨우 풀려났지만 이후 벼슬길이 영영 끊겨버렸다. 한번 반역자라는 낙인이 찍힌 그를 돌아보는 이도 거의 없었다.
이중환은 그동안 그가 마땅히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현실에서 그렇게 버림을 받았다. 젊은 남인 동학들과 함께 시사詩社를 결성하고 시에서 “그윽한 생각과 쓸쓸한 처지, 처연한 회한의 회포나 고독한 의지와 과감한 행동, 다부진 소신의 지조”를 보여준다고 평가받을 만큼 탁월한 시인이었던 이중환은 앞날이 창창하던 청류 관료에서 말 그대로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어버렸다. 사대부 사회에서 밀려난 그가 새롭게 맞아들인 현실은 바로 자신이 발 딛고 선 국토였다. 《택리지》의 원제가 ‘사대부가 살 만한 곳’이라는 뜻의 《사대부가거처士大夫可居處》라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이중환은 자신을 비롯해 더 이상 관직에 오를 수 없는 사대부가 어디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라는 고민을 담아 우리 국토를 세심하게 평론했다.
이렇게 해서 당대의 부동산 지침서이자 실리를 추구한 경제지리서이고, 모두가 참고한 관광안내서이면서 지역 문화와 전설을 담은 민속지인 《택리지》가 탄생했다. 《택리지》는 이후 여러 지리지에 인용되었으며, 개항 이후에는 일본군 장교가 조선 땅을 답사하기 위해 참고할 만큼 정확한 지식을 제공하는 책으로 오래도록 인정받았다. 그러나 《택리지》는 정확한 지리정보를 전달하는 데 그치는 책이 아니었다. “나는 이 책에서 살 만한 땅을 가려 살고자 해도 살 만한 땅이 없음을 한스럽게 여겨 이를 기록했을 뿐이다”라고 말한 데서 알 수 있듯이, ‘국토 평론가’ 이중환이 조선 팔도를 세심하게 살핀 참뜻은 바로 사색당파 없는 세상에서 다툼 없이 사는 데 있었다.
 
 
2. 사대부가 살 만한 땅을 찾아서
― 《택리지》, 조선에 새로운 주거지 이론을 제시하다

 
이중환이 《택리지》에서 던진 핵심적인 문제의식은 “그렇다면 사대부는 장차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인가?”라는 질문에 담겨 있다. 질문의 답은 바로 신분에 얽매이지 않고 생업을 꾸리는 것이다. 이중환은 먹고 살 만한 새로운 주거지를 찾기 위해 조선 팔도를 살핀다. 그는 살 만한 곳을 정하는 데 있어 ‘지리地理’, ‘생리生利’, ‘인심人心’, ‘산수山水’라는 기준을 제시했다.
그중에서도 각별히 관심을 보이는 것은 생리(경제)다. 그동안 일반 지리지가 행정 중심지에 집중했던 것과 달리, 이중환은 경제적으로 새롭게 부상하는 지방을 중심으로 서술했다. 원산, 강경, 광천, 목포 같은 포구와 한강·낙동강 등지에 인접한 교통 요지에 주목해 생계를 꾸릴 만한 명촌名村으로 선정했다. 그러나 강과 바다를 접한 교통 요지만으로는 사는 데 충분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이중환은 한양과의 거리에 주목해 충청도 일대와 강원도 원주를 명촌으로 거론했는데, 오늘날로 따지면 ‘직주근접론’의 원조인 셈이었다. 이렇게 실리를 중시하는 접근법에서 알 수 있듯이 이중환은 좋은 주거환경에서 경제적으로 윤택하게 살고 싶은 욕망을 긍정했다. 《택리지》를 시작으로 18세기 조선에서는 주거지 이론이 새롭게 떠올랐으며, 이후의 경세가들은 대부분 《택리지》의 자장 안에서 주거지 이론을 세웠다.
예컨대 이중환과 두세 세대 이후의 학자인 성해응成海應(1760~1839)은 《택리지》에서 주목한 지역을 취사선택해 《명오지名塢志》를 지었다. 그 역시 좋은 집터를 마련해 잘 살고 싶다는 현실적인 욕구로 책을 지었는데, 한양과의 근접성을 강조하기는 이중환보다 더 심했다. 그가 좋은 땅〔명오名塢〕으로 간주한 곳이 대부분 명문 사대부 집안이 세거하는 경기도에 몰려 있다는 데서 한계를 분명하게 드러낸다.
반면 서유구徐有?(1764~1845)는 《택리지》를 바탕으로 지은 《상택지相宅志》에서 이상적인 거주 공간을 장만하려는 사대부의 보편적인 욕망을 학문 차원으로 승화시켰다. 서유구는 이중환의 주거지 이론에 자신만의 관점을 도입해 기준을 세분화했을 뿐만 아니라, 그와 같은 기준을 통해 좋은 집터를 실제로 찾아보려 노력했다. 그러면서 이중환이 미처 살피지 못했던 지역을 새롭게 평가하는 등 국토를 평론하는 시야를 넓혔다. 이처럼 《택리지》는 새로운 주거지 이론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수많은 사대부에게 큰 관심을 받았다.
 
 
3. 200여 종의 사본으로 살펴보는 《택리지》의 변화
― 《택리지》가 걸어온 발자취를 들여다보다

 
《택리지》는 수많은 독자가 읽고 논하고 베껴 쓸 만큼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현재까지 알려진 사본만 해도 200여 종에 이른다는 사실이 이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문제는 사본이 저마다 다른 저본을 바탕으로 한 데다 숱한 이가 옮기면서 편목과 구성에서 일관성이 없어졌다는 데 있었다.
현재까지 정리된 의견은 이중환이 1751년 즈음에 초고본을 만들었고, 그 사이에 여러 사본이 빠르게 만들어졌으며, 지은이가 1756년 이전 어느 시점에 개정본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1912년 최남선崔南善(1890~1957)이 간행한 ‘광문회본’이 혼란을 키웠다. 그동안 학자들은 광문회본을 바탕으로 《택리지》를 연구해왔는데, 광문회본 역시 정본으로 삼기에는 일관성과 정합성이 부족했던 것이다.
안대회 교수는 아홉 명의 연구자들과 함께 200여 종의 사본에서 광문회본을 포함한 23종의 이본을 골라냈고, 이를 초고본과 개정본으로 분류해 《택리지》를 더욱 철저하게 분석했다. 초고본 계열은 풍수설을 채택하고 분량이 많으며, 개정본 계열은 풍수설을 덜어내고 설명을 간결하게 하는 등 서술 면에서 차이가 두드러진다. 안대회 교수는 서술상의 차이를 부각하는 데 그치지 않고 《택리지》의 구성을 보다 면밀하게 들여다봄으로써 《택리지》가 겪어온 변화를 차근차근 살핀다. 여기서 조선 후기의 문인 유중림柳重臨(1705~1771)이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에 《동국산수록東國山水錄》이라는 이름으로 《택리지》를 수록함으로써 또 다른 계보를 형성했다는 것도 흥미롭다.
이본 중에서 각별히 눈길을 끄는 것은 황상黃裳(1788~1870)의 ‘치원본’이다. 전라도 강진의 아전이자 정약용의 제자인 황상 역시 《택리지》를 필사해 보관하고 있었다. 그런데 치원본은 황상의 관점에 따라 완전히 재편집된 판본일 뿐만 아니라 아주 새로운 내용이 덧붙었다는 점에서 독특한 이본이다. 황상은 지역민의 시선으로 《택리지》를 해석함으로써 차별적인 시선에 맞서 호남과 서북 지역 등 소외받는 곳을 재평가했다. 이처럼 독창적인 이본들은 《택리지》가 처음 세상에 나온 이래 당대와 후대 사대부들의 관심 속에서 끊임없이 새롭게 만들어진 저작임을 잘 보여준다.
 
 
4. ‘전설의 고향’, 《택리지》
― 구비 지식과 지역 전설로 민중의 마음을 읽다
 
《택리지》에서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구전 지식과 지역 전설을 풍성하게 싣고 있다는 것이다. 이중환 역시 유학을 깊이 공부한 사대부였지만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현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의 친척인 실학자 이익李瀷(1681~1763)이 “산맥과 수세水勢를 비롯하여 풍토와 민속, 재화의 생산과 수륙의 운송 등을 조리를 갖춰서 분간하고 설명하였다”고 지적한 것처럼, 이중환은 생리와 지리 못지않게 민속에도 깊은 관심을 보였다. 국토를 지리적 관찰 대상으로 간주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인간의 삶과 역사가 숨 쉬는 곳으로 대한 것이다. 이중환이 《택리지》에 수록한 40종 안팎의 지역 전설 중 최초로 채록한 것이 많다는 점에서 문헌학적인 가치 또한 높다.
특히 자주 언급되는 전설은 통일신라 말기의 문인 최치원崔致遠(857~908?)과 연관된 이야기다. 당나라에 유학 가서 화려한 경력을 쌓았지만 몰락하는 나라를 부흥시키지 못해 은사가 된 최치원의 이야기는 여러 지역의 무속 신앙과 깊은 연관이 있어 무척 도드라진다. 하지만 이중환이 최치원에게 관심을 가진 보다 큰 이유는 최치원이 지위를 상실한 사대부는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알려주는 일종의 롤 모델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전쟁 영웅의 이야기 역시 중요하게 이야기되는 전설이다. 이중환은 정유재란 때 이순신이 명량해전에서 철쇄를 엮어 왜군을 대파했다는 전설과, 만주족 침략을 억제했지만 광해군에게 충성을 다한다는 이유로 죽은 박엽 이야기를 소개한다. 이중환은 그 밖에도 역사적 진실과 무관하게 지역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오는 전설을 과감히 수록해 지역민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들려준다. 그 또한 온전히 믿기는 어렵지만 나름의 진실을 담고 있다는 관점에서 지역 전설을 가감 없이 실었다.
또 하나 흥미로운 이야기는 임진왜란 때 참전했다는 원숭이 기병대 전설이다. 오늘날의 평택과 아산 사이에서 1597년 벌어졌다는 소사 전투는 조·명 연합군의 대승으로 끝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중환은 이 전투에서 수백 마리의 원숭이 기병대가 출전해 적진을 교란시켰다는 이야기를 실었다. 박진감 넘치는 서술은 생생하고 구체적이어서 완전히 꾸며낸 이야기로는 보이지 않는다. 문제는 원숭이 기병대에 관한 기록이 명나라와 일본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는다는 데 있었다. 안대회 교수는 조선시대의 야사가 담긴 기록물은 물론, 양반가에 전해오는 기록화를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원숭이 기병대에 나름대로 역사적 근거가 있음을 확인했다. 여기서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원숭이 기병대 이야기를 비롯한 지역 전설이 온전한 사실이냐가 아니라, 왜란과 호란을 겪으며 고통받은 민중의 기억이 어떻게 《택리지》에 담겨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이처럼 《택리지 평설》은 《택리지》의 풍부한 면모를 끈기 있게 살피는 책이다. 안대회 교수는 ‘조선시대의 가장 대표적인 인문지리지’라는 이름 아래 감춰졌던 다양한 이야기를 하나하나 드러내면서 《택리지》의 가치를 더욱 드높인다. 당파 싸움 없는 세상을 꿈꾼 이중환의 문제의식, 좋은 주거지를 찾고 싶은 사대부들의 뜨거운 열망, 나름의 관점으로 새롭게 편집하고 해석을 덧붙여 《택리지》를 갱신한 지식인들의 실천, 사대부들이 허망하다고 보았던 전설을 모아 민중의 마음을 읽으려 했던 지은이의 노력 등이 잘 드러난다. 《택리지 평설》은 우리의 대표적인 고전 《택리지》를 더욱 풍성하게 읽는 데 큰 보탬이 될 것이다.

저자소개

안대회 (저자)
연세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한문학과 교수로, 대동문화연구원장을 맡고 있다. 옛글을 학술적으로 엄밀히 고증하면서도 특유의 담백하고 정갈한 문체로 풀어내 독자들에게 고전의 가치와 의미를 전해왔다. 제34회 두계학술상과 제16회 지훈국학상을 수상했다. 지은 책으로는 《조선의 명문장가들》, 《벽광나치오》, 《정조치세어록》, 《궁극의 시학》, 《선비답게 산다는 것》, 《담바고 문화사》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완역 정본 택리지》(공역), 《해동화식전》, 《연경, 담배의 모든 것》, 《소화시평》, 《북학의》, 《녹파잡기》 등이 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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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1장 《택리지》 서설: 《택리지》는 어떻게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실용서가 되었나
18세기 인문지리학의 명저 《택리지》
사대부 사회에서 쫓겨난 지식인의 자기표현
《택리지》는 무슨 책인가
중상주의, 《택리지》의 지적 토양이 되다
조선의 전무후무한 지리서 《택리지》

2장 국토 평론가 이중환: 그의 생애와 학문의 행방
명문가의 기린아로 태어나다
앞날이 창창하던 청류 관료 시절
목호룡 사건으로 인한 파국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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