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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학 총서 4 정조의 법치 - 법의 저울로 세상의 바름을 살피다

김호(저자) | 휴먼역사 | 23,000원 | 2020.11.30 | 328p | ISBN : 9791160805123 | 94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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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학 총서 4 정조의 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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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는 과연 근대의 문을 연 계몽군주였는가?

정조와 그의 시대를 당대의 맥락에서 재해석한
최초의 ‘정조학’ 연구 총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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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1. 고정된 이미지를 깨고 되살아난 정조와 그의 시대
정조는 누가 뭐래도 조선을 대표하는 왕이다. 최근에는 ‘성군’ 하면 첫손에 꼽히는 세종보다도 세간의 주목을 더 받는 듯하다. 두 가지 이미지가 중첩되어 보이기 때문이 아닐까? 첫 번째는 성군의 이미지이다. 정조를 학자군주이자 만인의 모범이 된 인물이라며 ‘철인(哲人)’으로 평가하는가 하면, 다방면의 뛰어난 재능으로 시대의 변화를 통찰하며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했던 군주라며 정조의 무결점 면모를 부각시키기도 한다. 그리고 여기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수원 화성이 주는 시각적 효과까지 더해진다. 두 번째는 ‘비운의 군주’ 이미지다. 소설 《영원한 제국》(1993) 이후 드라마 〈이산〉(2007), 영화 〈역린〉(2014) 등 대중 매체를 통해,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를 여의고 군주가 되어서도 적의 끊임없는 암살 기도에 시달리는, 그래서 연민의 정을 불러일으키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정조어찰첩》이 발견되자 정조는 마키아벨리스트가 되었다. 정치적으로 대립했던 것으로 알려진 심환지와 비밀편지를 주고 받으며 막후에서 조정을 이끌어나간 노련한 정치가 말이다.
그동안 우리는 200년 전 정조를 현대의 시선에서 보아왔다. 우리 역사에서 18세기 후반은 ‘조선의 르네상스’여야 했고, 그에 발맞춰 정조는 구습을 개혁하여 근대 국가의 여명을 준비한 계몽군주 또는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노련한 정치가라는 두 가지 얼굴을 지니게 되었다.
과연 정조는 이러한 해석들에 만족할까? 이번에 출간된 ‘정조학 총서’(전 4권)는 정조에 대한 기왕의 고정된 이미지를 또 한 번 버릴 것을 제안한다. 새롭게 정조에 다가가는 방법은 “오직 정조의 ‘말과 행동’(텍스트)을 ‘역사적 맥락’(컨텍스트)을 고려하여 되도록 당대의 관점과 시야에서 해석하는 것이다.”(4권 ‘책을 펴내며’에서)
당대의 사료가 보여주는 정조는 익히 알려진 모습과는 달리 성리학의 가치가 실현되는 나라를 완성하기 위한 개혁을 추진한 군주였다. 이 총서는 정조가 추구한 성리학의 가치를 중심에 놓고, 문·무·예·법이라는 네 분야로 나누어 정조와 그의 시대를 총체적이고 객관적으로 통찰한 최초의 ‘정조학’ 연구 성과다. 정조의 삶과 그가 남긴 글을 현대의 시선에 가두지 않고 18세기 후반 조선이라는 당대의 맥락에서 재해석하고 그 의미를 찾아가며, 정조와 그의 시대의 참모습을 되살려낸다.
 
 
2. 조선시대 연구자 4인의 ‘정조시대 새롭게 조명하기’
‘정조학 총서’는 조선시대사 연구자 4인이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한국학총서 지원 아래 6년의 노력 끝에 도출한 결과물이다. 그동안 조선의 18세기는 주로 근대주의의 시야에서 설명되어왔고, 그에 따라
 
정조는 근대 국가의 여명을 준비하는 계몽군주로 묘사되곤 했다. 그러나 4인의 필진이 사료를 읽으며 깨달은 것은, 뜻밖에도 정조가 실학의 시대를 연 계몽군주이기보다는 성리학의 신봉자였다는 점이다. 네 사람은 이 점에 의견을 같이하고 정조와 그의 시대에 대한 새로운 조명에 나섰다.
총서 필진은 정조와 그의 말들(텍스트)을 18세기 후반의 조선이라는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발화된 특수한 조건의 산물’로 해석하고 그 의미를 발견하고자 했다. 기왕의 편견으로부터 시야를 돌려 정조의 말을 당대의 맥락에서 명확히 이해할수록, 정조를 현재의 목적론에 가두거나 과거의 골동품으로 내버려두지 않고 현재에 되살릴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네 사람은 각각 자신의 전문 분야인 문학[文], 군사[武], 교화[禮]와 법치[法]를 주제로 설정하고, 정조와 그의 시대를 관통하는 역사적 조건 가운데 정학(正學), 즉 성리학을 그 중심에 놓은 뒤, 각자의 개성을 살려 글을 완성했다. 백승호는 ‘성리학적 세계관의 구현’을 향한 정조의 문학론을, 허태구는 ‘문무겸전(文武兼全)’을 기초로 한 외교국방론을, 김지영은 ‘수신제가에서 치국평천하’에 이르는 예교론을, 김호는 ‘무위이치(無爲而治)의 형정론’을 화두 삼아 각자 정조와 그의 시대를 탐색했다.
 
 
3. ‘정조학 총서’의 주요 내용과 구성
 
정조학 총서 1_ 《정조의 문치—글쓰기로 인의의 정치를 펴다》
정조는 탁월한 학문적 능력을 지녔을 뿐만 아니라 문학에도 뛰어난 군주였다. 이 책에서는 정조의 ‘문학’을 군주의 통치 행위와 관련된 넓은 의미의 글쓰기라는 개념으로 보고 그가 문학을 통해 통치를 구현해가는 양상을 밝혀 정조의 문학과 정치의 긴밀한 관련성을 분석한다.
1부에서는 정조가 세손 시절 창작했던 텍스트를 검토했다. 국왕의 후계자로서 수학기(修學期)를 거치면서 지배 이념을 점차 내면화하는 과정을 보인다. 2부에서는 정조가 즉위한 뒤 국왕이라는 특수한 입장이 반영된 문학을 분석했다. 전통 시대 군주는 문학을 통치의 핵심적인 요소로 간주하였다. 군주에게 문학은 경국(經國)과 관련되어 있었고, 정치적 난관에 봉착했을 때 글쓰기로 타개하기도 했다. 3부에서는 정조의 문학을 중심에 두고 정조의 문치와 관련된 신료들의 문학을 분석했다.
 
정조학 총서 2_ 《정조의 무치—문무를 갖춘 완전한 나라를 꿈꾸다》
이 책은 근대 서구의 척도로 평가해온 정조대 군사 분야의 기획과 성취를 당대 사회의 맥락에서 새로이 분석했다. 이 시기 군사사의 주요 이슈인 장용영 신설, 화성 축조, 군제 개편 시도, 병서 편찬 등의 성과와 한계를 살피고, 이를 둘러싼 정조의 대외 인식과 문무겸전론의 함의를 재해석한다.
1부에서는 정조대 외교 활동의 실상과 노선, 그 인식론적 기반이 되는 대명의리의 내용과 성격, 마지막으로 정조의 대외 인식과 지방군 전력 정비의 상관관계 등을 검토했다. 2부에서는 정조의 군제 개혁과 화성 방어 체제 정비의 과정과 함의를 다양한 측면에서 살펴봤다. 3부에서는 정조의 문?무 인식이란 주제로 정조가 제기한 문무겸전론의 본질과 목적이 무엇이었으며, 이를 위해 정조는 어떤 정책을 시행했는지 분석했다.
 
 
정조학 총서 3_ 《정조의 예치—예를 바로잡아 백성의 마음을 기르다》
정조는 군사(君師)를 자임하며 가족, 지역사회, 나라, 천하라는 모든 범주에 속하는 조선의 제도와 실천을 정비하여, 풍요와 안정, 화합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백성을 길러내려 했다. 이 책은 예교와 예치에 대한 정조의 사유와 실천을 살피고 재구성하며, 정조대 ‘개혁’의 진면모를 드러낸다.
1부에서는 정조가 사친, 즉 사도세자에 대한 궁원의례와 동생, 고모 등 친속에 대한 처분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나갔는지 살펴봤다. 2부에서는 정조의 《향례합편》에 담긴 지역사회에서의 예제와 예교에 대한 문제의식을 검토했다. 3부에서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거행했던 주요 학교 의례(성균관 식당례, 춘당대 식당례)의 실천과 그 의미를 살펴봤다. 4부에서는 정조대 국가례 시행에서 특별히 돋보이는 두 방면의 주제를 검토하여, 정조가 왕조의 가치를 어떤 면에서 강조하려 했는지 알아보았다. 5부에서는 정조의 천하례 인식을 청?일본과 함께하는 천하에서 다 같이 오랑캐로 전락하지 않기 위한 노력의 차원에서 읽어내고자 했다.
 
정조학 총서 4_ 《정조의 법치—법의 저울로 세상의 바름을 살피다》
정조는 인륜의 교화를 통해 백성의 자발적 질서가 이루어지기를 희망하며, 공정한 판결을 위해 직접 살옥사건의 판결문을 살폈다. 이 책은 정조의 유교형정론을 깊이 있게 분석하고, 당대 인간의 권리와 감정, 사회가치와 정의의 문제라는 넓은 시야로 ‘조선의 법치’를 고찰한다.
1부에서는 유교형정론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덕주형보(德主刑補)의 의미에 대해 살펴보고 조선판 《신주무원록》의 증보 과정을 정리했다. 2부에서는 《일득록》의 내용을 분석하여 정조가 시중의 묘, 법과 정·리의 조화, 물정의 흥기를 어떻게 현실화하려 했는지 살펴봤다. 3부에서는 정조가 ‘견자’와 ‘광자’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이유를 살펴보고, 이러한 인식을 살옥심리 과정에 어떻게 반영했는지 검토했다. 4부에서는 정조 사후 그의 형정론이 어떻게 변주되는지 정원용의 관형론과 정약용의 형정론을 통해 살펴봤다.
 
 
4. 책 속에서

 
정조가 살옥 심리에 밤새워가며 정성을 쏟았던 이유
조선의 형정은 교화의 또 다른 얼굴이었다. 정조는 자신의 판결문을 통해 덕화의 의지를 천명했을 뿐 아니라 관료들의 형정에 영향을 미치고자 했으며, 나아가 백성들의 행동을 바루고자 했다. …… 정조는 살옥사건을 심리하면서 천하의 공론, 즉 물정에 부합하는 최선의 판결을 얻음으로써 당대의 인정세태에 호응하고자 했다. 물정에 부합하는 시중의 판결을 내리는 순간, 그 재판 결과는 민심에 공평한 법 감정으로 수용될 것이요 원통함은 저절로 사라질 터였다. 정조가 살옥 심리에 밤새워가며 정성을 쏟았던 이유가 여기 있었다. ―머리말 〈‘권선징악’의 통치론〉(24, 54쪽) 중에서
 
《무원록》을 근거로 살옥 심리를 펴다
정조는 《무원록》을 통해 사건의 내막과 실인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이를 근거로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 호생지덕의 정치를 펼치고자 했다. 그렇다고 처벌받아 마땅한 자를 쉽게 용서하거나 감형하지는
 
않았다. 전주 양시돌 사건의 경우, 정조는 《무원록》의 지식을 동원해 살해 후 범행을 은폐하려 한 악행을 간파해냈다. 양시돌이 한설운금과 술을 마시고 다투다가 그날 사망했는데, 목을 매 자살한 사건으로 보고되었다. 정조는 시장을 살펴본 후 자액(自縊)이 될 수 없다면서 사건의 재조사를 명했다. 정조는 사망 후에 목을 매달아 자살한 것처럼 위장한 경우 액흔이 흰 빛을 띤다는 《무원록》의 조항을 근거로 삼았다. 검시 과정에서 이를 살피지 않았던 지방관의 견책은 당연했다.
―1부 〈조선 형정론의 전통과 ‘덕주형보’〉(111쪽) 중에서
 
차라리 관대하다고 비판받을지언정 지나쳐서는 안 된다
형벌은 불가피하지만 될 수 있으면 처벌을 가볍게 하여 호생지덕을 펼쳐야 했다. 정조는 이른바 초옥(楚獄)의 고사를 경계로 삼았다. 초왕(楚王)의 감옥에 사람이 넘쳤다는 일화는 중국 한대 명제(明帝)의 동생 초왕이 모반한 뒤 이와 연관되어 무고하게 죽은 사람이 많았던 일을 비판한 것이다. 왕이 지나치게 많은 사람을 죽이고도 이를 기쁘게 생각한 나머지 나라가 망했다는 것이다.
정조는 형정은 차라리 관대하다고 비판받을지언정 지나쳐서는 안 되고, 가볍게 처벌하는 잘못을 저지를지언정 질질 끌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정조의 깊은 뜻을 헤아리지 못한 누군가가 왕의 의지가 나약하다고 비판하자, 정조는 엄형을 일삼다가 나라가 망한 초옥의 고사를 지적한 것이다.
―2부 〈《일득록》을 통해 본 정조의 법치〉(128쪽) 중에서
 
광자와 의협을 칭송한 정조의 교화론
공정한 사회는 불의와 부도덕에 침묵해서는 이루어질 수 없었다. 정조는 함묵과 교언영색을 비판하는 동시에 진정한 광자와 의협의 용기를 칭송했다. 부당함에 과감히 맞설 수 있는 광자들, 이들이야말로 정의로운 공동체를 만들 수 있었다. …… 그리고 천금을 주고라도 광자의 용기를 칭찬해야 한다던 다산의 생각은, 명덕(明德)을 부여받은 그 누구라도 불의와 부도덕을 비판하고 인간다움을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던 정조의 교화론에 바탕했다. 정조의 통치 기획, 다시 말해 명예를 아는 사람들과 진정한 광자들에 의해 말세(末世)의 조선이 일신(日新)할 것이라는 기대는 소민들에 대한 교화, 인간다움의 도리를 강조한 형정 운영과 그 맥락이 잇닿아 있었다.
―3부 〈정조의 명예론과 《심리록》〉(246쪽) 중에서
 
가짜를 경계한 정약용의 형정론
특히 인륜을 가장한 ‘거짓 행위’를 세밀하게 살펴서 반드시 응징해야 했다. 사람을 죽이고도 거짓으로 형제의 우애를 앞세우거나, 남편의 복수였다고 주장하고, 부모를 위한 효도였다고 강조하는 이들의 ‘위선’을 처벌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다산은 도덕교화를 강조하면 역설적으로 인륜을 가장한 위선들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이는 성리학 사회의 태생적인 모순이자 불가피한 현상이었지만, 위선과 위광 등 가짜를 제대로 변별하지 못할 경우 심각한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었다. 인륜의 도리를 지나치게 강조하면서 생겨난 역효과를 관리하지 못한다면, 조선 사회는 인간 본성을 신뢰하지 못하고 붕괴할 수 있었다. 다산은 조선 후기의 진짜·가짜 논쟁, 즉 위광과 위선에 대한 관리야말로 형정 운용의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했다. ―4부 〈정조 이후의 형정론〉(279쪽) 중에서
 
백성들의 신뢰를 받은 정조의 형정
정조가 살옥 심리를 숙고한 배경에는 사회가 ‘부당하거나 정의롭지 못한 느낌’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깔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나의 사건(혹은 사태)을 둘러싼 고유한 맥락과 사회적 가치들
 
이 무시되었을 때 그 결과는 명확했다. 때문에 정조는 매번 심리 때마다 법의 인율에 앞서 사건의 진실과 고유한 맥락 그리고 이를 둘러싼 사회적 통념을 깊이 ‘고려’했다. 물정 (物情) 으로 불릴 ‘시대의 (법)감정’에 호응하려면 인정투쟁과 그 바탕의 욕망을 존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처럼 개개의 사건을 심리하면서 어떤 이에게 주어져야 할 ‘적절한 존중’, 다시 말해 사정을 세심하게 배려한다는 사실로 인해 백성들은 ‘형정을 신뢰’했을 뿐 아니라 ‘명예 추구의 의지’를 키울 수 있었다.
―맺음말 〈정조의 ‘공평론’〉(306쪽) 중에서
 

저자소개

김호 (저자)
서울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 및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경인교육대학교 사회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조선 의료사 연구와 더불어 조선사회의 범죄와 그에 따른 처벌 등에 관심을 갖고 통치의 제도화, 정치의 윤리 등을 고민하고 있다. 주요 논저로 〈연암 박지원의 형정론〉, 〈조선후기 흠휼의 두 가지 모색〉, 〈시골 양반 역병 분투기〉, 〈16~17세기 조선의 지방 의국 운영〉, 《허준의 동의보감 연구》, 《조선의 명의들》, 《조선왕실의 의료문화》, 《정약용, 조선의 정의를 말하다》, 《100년 전 살인사건》, 《다산학 공부》(공저) 등이 있고, 역서로 《신주무원록》, 《다산의 사서학》(공역) 등이 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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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론 ‘정조학 총서’를 펴내며|책을 펴내며

머리말 ‘권선징악’의 통치론

1부 조선 형정론의 전통과 ‘덕주형보’
1. ‘경민’에서 ‘수덕’으로
2. 《무원록》과 옥정 파악의 중요성

2부 《일득록》을 통해 본 정조의 법치
1. 정조의 흠휼론
2. 시중의 묘와 물정의 흥기

3부 정조의 명예론과 《심리록》
1. 정조의 ‘명예론’
2. 정조의 ‘심리’와 형정교화


4부 정조 이후의 형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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