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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학 총서 3 정조의 예치 - 예를 바로잡아 백성의 마음을 기르다

김지영(저자) | 휴먼역사 | 23,000원 | 2020.11.30 | 316p | ISBN : 9791160805116 | 94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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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학 총서 3 정조의 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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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는 과연 근대의 문을 연 계몽군주였는가?

정조와 그의 시대를 당대의 맥락에서 재해석한
최초의 ‘정조학’ 연구 총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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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1. 고정된 이미지를 깨고 되살아난 정조와 그의 시대
정조는 누가 뭐래도 조선을 대표하는 왕이다. 최근에는 ‘성군’ 하면 첫손에 꼽히는 세종보다도 세간의 주목을 더 받는 듯하다. 두 가지 이미지가 중첩되어 보이기 때문이 아닐까? 첫 번째는 성군의 이미지이다. 정조를 학자군주이자 만인의 모범이 된 인물이라며 ‘철인(哲人)’으로 평가하는가 하면, 다방면의 뛰어난 재능으로 시대의 변화를 통찰하며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했던 군주라며 정조의 무결점 면모를 부각시키기도 한다. 그리고 여기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수원 화성이 주는 시각적 효과까지 더해진다. 두 번째는 ‘비운의 군주’ 이미지다. 소설 《영원한 제국》(1993) 이후 드라마 〈이산〉(2007), 영화 〈역린〉(2014) 등 대중 매체를 통해,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를 여의고 군주가 되어서도 적의 끊임없는 암살 기도에 시달리는, 그래서 연민의 정을 불러일으키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정조어찰첩》이 발견되자 정조는 마키아벨리스트가 되었다. 정치적으로 대립했던 것으로 알려진 심환지와 비밀편지를 주고 받으며 막후에서 조정을 이끌어나간 노련한 정치가 말이다.
그동안 우리는 200년 전 정조를 현대의 시선에서 보아왔다. 우리 역사에서 18세기 후반은 ‘조선의 르네상스’여야 했고, 그에 발맞춰 정조는 구습을 개혁하여 근대 국가의 여명을 준비한 계몽군주 또는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노련한 정치가라는 두 가지 얼굴을 지니게 되었다.
과연 정조는 이러한 해석들에 만족할까? 이번에 출간된 ‘정조학 총서’(전 4권)는 정조에 대한 기왕의 고정된 이미지를 또 한 번 버릴 것을 제안한다. 새롭게 정조에 다가가는 방법은 “오직 정조의 ‘말과 행동’(텍스트)을 ‘역사적 맥락’(컨텍스트)을 고려하여 되도록 당대의 관점과 시야에서 해석하는 것이다.”(4권 ‘책을 펴내며’에서)
당대의 사료가 보여주는 정조는 익히 알려진 모습과는 달리 성리학의 가치가 실현되는 나라를 완성하기 위한 개혁을 추진한 군주였다. 이 총서는 정조가 추구한 성리학의 가치를 중심에 놓고, 문·무·예·법이라는 네 분야로 나누어 정조와 그의 시대를 총체적이고 객관적으로 통찰한 최초의 ‘정조학’ 연구 성과다. 정조의 삶과 그가 남긴 글을 현대의 시선에 가두지 않고 18세기 후반 조선이라는 당대의 맥락에서 재해석하고 그 의미를 찾아가며, 정조와 그의 시대의 참모습을 되살려낸다.
 
 
2. 조선시대 연구자 4인의 ‘정조시대 새롭게 조명하기’
‘정조학 총서’는 조선시대사 연구자 4인이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한국학총서 지원 아래 6년의 노력 끝에 도출한 결과물이다. 그동안 조선의 18세기는 주로 근대주의의 시야에서 설명되어왔고, 그에 따라
 
정조는 근대 국가의 여명을 준비하는 계몽군주로 묘사되곤 했다. 그러나 4인의 필진이 사료를 읽으며 깨달은 것은, 뜻밖에도 정조가 실학의 시대를 연 계몽군주이기보다는 성리학의 신봉자였다는 점이다. 네 사람은 이 점에 의견을 같이하고 정조와 그의 시대에 대한 새로운 조명에 나섰다.
총서 필진은 정조와 그의 말들(텍스트)을 18세기 후반의 조선이라는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발화된 특수한 조건의 산물’로 해석하고 그 의미를 발견하고자 했다. 기왕의 편견으로부터 시야를 돌려 정조의 말을 당대의 맥락에서 명확히 이해할수록, 정조를 현재의 목적론에 가두거나 과거의 골동품으로 내버려두지 않고 현재에 되살릴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네 사람은 각각 자신의 전문 분야인 문학[文], 군사[武], 교화[禮]와 법치[法]를 주제로 설정하고, 정조와 그의 시대를 관통하는 역사적 조건 가운데 정학(正學), 즉 성리학을 그 중심에 놓은 뒤, 각자의 개성을 살려 글을 완성했다. 백승호는 ‘성리학적 세계관의 구현’을 향한 정조의 문학론을, 허태구는 ‘문무겸전(文武兼全)’을 기초로 한 외교국방론을, 김지영은 ‘수신제가에서 치국평천하’에 이르는 예교론을, 김호는 ‘무위이치(無爲而治)의 형정론’을 화두 삼아 각자 정조와 그의 시대를 탐색했다.
 
 
3. ‘정조학 총서’의 주요 내용과 구성

 
정조학 총서 1_ 《정조의 문치—글쓰기로 인의의 정치를 펴다》
정조는 탁월한 학문적 능력을 지녔을 뿐만 아니라 문학에도 뛰어난 군주였다. 이 책에서는 정조의 ‘문학’을 군주의 통치 행위와 관련된 넓은 의미의 글쓰기라는 개념으로 보고 그가 문학을 통해 통치를 구현해가는 양상을 밝혀 정조의 문학과 정치의 긴밀한 관련성을 분석한다.
1부에서는 정조가 세손 시절 창작했던 텍스트를 검토했다. 국왕의 후계자로서 수학기(修學期)를 거치면서 지배 이념을 점차 내면화하는 과정을 보인다. 2부에서는 정조가 즉위한 뒤 국왕이라는 특수한 입장이 반영된 문학을 분석했다. 전통 시대 군주는 문학을 통치의 핵심적인 요소로 간주하였다. 군주에게 문학은 경국(經國)과 관련되어 있었고, 정치적 난관에 봉착했을 때 글쓰기로 타개하기도 했다. 3부에서는 정조의 문학을 중심에 두고 정조의 문치와 관련된 신료들의 문학을 분석했다.
 
정조학 총서 2_ 《정조의 무치—문무를 갖춘 완전한 나라를 꿈꾸다》
이 책은 근대 서구의 척도로 평가해온 정조대 군사 분야의 기획과 성취를 당대 사회의 맥락에서 새로이 분석했다. 이 시기 군사사의 주요 이슈인 장용영 신설, 화성 축조, 군제 개편 시도, 병서 편찬 등의 성과와 한계를 살피고, 이를 둘러싼 정조의 대외 인식과 문무겸전론의 함의를 재해석한다.
1부에서는 정조대 외교 활동의 실상과 노선, 그 인식론적 기반이 되는 대명의리의 내용과 성격, 마지막으로 정조의 대외 인식과 지방군 전력 정비의 상관관계 등을 검토했다. 2부에서는 정조의 군제 개혁과 화성 방어 체제 정비의 과정과 함의를 다양한 측면에서 살펴봤다. 3부에서는 정조의 문?무 인식이란 주제로 정조가 제기한 문무겸전론의 본질과 목적이 무엇이었으며, 이를 위해 정조는 어떤 정책을 시행했는지 분석했다.
 
 
정조학 총서 3_ 《정조의 예치—예를 바로잡아 백성의 마음을 기르다》
정조는 군사(君師)를 자임하며 가족, 지역사회, 나라, 천하라는 모든 범주에 속하는 조선의 제도와 실천을 정비하여, 풍요와 안정, 화합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백성을 길러내려 했다. 이 책은 예교와 예치에 대한 정조의 사유와 실천을 살피고 재구성하며, 정조대 ‘개혁’의 진면모를 드러낸다.
1부에서는 정조가 사친, 즉 사도세자에 대한 궁원의례와 동생, 고모 등 친속에 대한 처분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나갔는지 살펴봤다. 2부에서는 정조의 《향례합편》에 담긴 지역사회에서의 예제와 예교에 대한 문제의식을 검토했다. 3부에서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거행했던 주요 학교 의례(성균관 식당례, 춘당대 식당례)의 실천과 그 의미를 살펴봤다. 4부에서는 정조대 국가례 시행에서 특별히 돋보이는 두 방면의 주제를 검토하여, 정조가 왕조의 가치를 어떤 면에서 강조하려 했는지 알아보았다. 5부에서는 정조의 천하례 인식을 청?일본과 함께하는 천하에서 다 같이 오랑캐로 전락하지 않기 위한 노력의 차원에서 읽어내고자 했다.
 
정조학 총서 4_ 《정조의 법치—법의 저울로 세상의 바름을 살피다》
정조는 인륜의 교화를 통해 백성의 자발적 질서가 이루어지기를 희망하며, 공정한 판결을 위해 직접 살옥사건의 판결문을 살폈다. 이 책은 정조의 유교형정론을 깊이 있게 분석하고, 당대 인간의 권리와 감정, 사회가치와 정의의 문제라는 넓은 시야로 ‘조선의 법치’를 고찰한다.
1부에서는 유교형정론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덕주형보(德主刑補)의 의미에 대해 살펴보고 조선판 《신주무원록》의 증보 과정을 정리했다. 2부에서는 《일득록》의 내용을 분석하여 정조가 시중의 묘, 법과 정·리의 조화, 물정의 흥기를 어떻게 현실화하려 했는지 살펴봤다. 3부에서는 정조가 ‘견자’와 ‘광자’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이유를 살펴보고, 이러한 인식을 살옥심리 과정에 어떻게 반영했는지 검토했다. 4부에서는 정조 사후 그의 형정론이 어떻게 변주되는지 정원용의 관형론과 정약용의 형정론을 통해 살펴봤다.
 
 
4. 책 속에서
 
정조가 예교정치를 지향한 까닭
정조는 후손에게 길이 복되는 정치를 꿈꾸었다. 단기적 효과를 내는 시책보다 ‘나라가 영구히 유지될 수 있는 방도’를 찾고자 했다. 국방과 민생, 외교 등 시급한 현안들을 처리하고 경제적 풍요, 정치적 안정, 사회적 화합을 이끌어낼 정책과 제도도 마련했다. 그러나 조선 사람들에게 더불어 풍요롭고자 하고 안정과 화합을 삶의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마음이 없다면, 사회의 근본적 개선과 항구적 발전은 불가능하다고 여겼다.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길러낼 수 있는 방안을 찾고 실행하고자 했다. 사람들의 내면에 어떤 식으로든 존재하는 이런 마음을 잘 길러낼 수 있게 제도를 마련하고 문화를 구축하려는 정치가 예교정치이다. 이때 정치는 포괄적인 의미에서의 교육과 다름없었고, 왕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교육자일 수밖에 없었다. 정조가 보기에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정치 비법 역시 여기에 있었다. ―〈책을 펴내며〉(8~9쪽) 중에서
 
 
만민을 가르치면 책임 있는 실천으로 이끌 수 있다
정조는 사회 속에서 살아가기 위한 도덕적 능력은 하늘이 모든 사람들에게 내려준 것이며, 모든 사람들이 타고난 것이라고 보았다. 그렇기 때문에 만민을 가르쳐 자율적인 도덕주체로 거듭나게 하면, 그들 각자가 자발적으로 가정과 지역사회에서 본심에 토대한 책임 있는 실천들을 해나갈 수 있다고 보았다. 국가가 행정력을 써서 일일이 개입하고 간섭할 필요도 없고 형벌로 위협하고 감시하지 않아도 집집마다 편안하고 다툼 없이 안정될 수 있는 나라, 그런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례, 향례, 학교례 등 정부 이외의 영역에서의 예제에 더 힘을 기울이고 실천해야 했다.
―머리말 〈정조의 조선 예제 인식과 변통론〉(46쪽) 중에서
 
“왕도 공도를 따라야 한다.”
추숭(추왕)의 전례를 행한다는 것은 천하를 위해 정한 종통 계승의 원칙〔不貳本〕을 사사로운 정(아버지에 대한 애통함)에 이끌려 바꾼다는 것이다. 이는 정조가 스스로 공사를 재량할 수 있는 정치가가 아님을 명백하게 드러내는 일이었다. 정조는 영조에 대한 의리 때문에 추숭에 반대했던 것이 아니다. ‘왕도 공도를 따라야 한다.’는 정치적 심성이 주류인 상황에서, 공공의 대원칙을 사적으로 침해하면 군주의 정당성이 근본적으로 훼손될 것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영조와의 약속은 이 원칙을 아버지에 대한 친친의 정때문에 훼손하지 않겠다는 약속이었다. 이를 어기는 것은 권력을 잡고 복수를 하기 위해 속이고 기만했다는 명백한 선언일 수밖에 없었다.
―1부 〈가례: 정조의 제한적 가례 인식과 효치론〉(87쪽) 중에서
 
정조가 관례와 혼례를 《향례합편》에 넣은 문제의식
조선에서도 조선의 실정에 맞게 가례서를 만들며 신유학적 가족 모델을 정착시키고자 노력해왔다. 상례와 제례는 과도할 정도로 행해졌지만, 정작 관례와 혼례는 예제대로 제대로 실행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신유학적 문제의식에 따라 가정을 교육의 첫 장소로 삼고, 가정에서 배운 공공적인 마음을 사회로 확장해나가길 기대했던 이들에게는 큰 문제로 여겨졌을 것이다. 상례와 제례를 통해 공고히 하려 했던 소종주의의 친족 제도는 모든 사람에게 최소한의 울타리를 마련해준다는 의의를 넘어서 일부 특권층의 위세를 분식하는 대종주의의 가문으로 발전함에 따라 그 본래의 의의를 오히려 상실 해가고 있었다. …… 신유학적 가례 제도의 본의를 되살려 ‘가’가 만민 교화의 첫 장소로 기능할 수 있도록 되돌려야 했다. 정조가 풍속 교화를 돕기 위해 《향례합편》을 편찬하면서 이미 과도하게 실행되고 있는 상례와 제례 대신 관례와 혼례를 넣도록 한 문제의식은 이 지점에 있었다.
―2부 〈향례: 지방의 자발적 도덕화에 대한 기대와 《향례합편》〉(146~147쪽) 중에서
 
태학 유생들과 함께 밥을 먹다
1783년 8월에도 춘당대에 나아가 태학 유생을 불러 강을 하고 나서 식당을 베풀었다. 정조는 “정자 (程子)는 승사(僧舍)에 모여 앉아 먹는 것을 보고도 삼대의 위의가 있다고 감탄했으니, 대학의 식당이야 더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북을 쳐서 나아가고 나이 순서로 앉는 것이 질서정연하여 볼 만하기에 내 기꺼이 유생들과 함께하는 것이다. 나물 반찬이 비록 초라하나 내주(內廚)의 진수성찬보다 나으니, 경들은 각각 배불리 먹도록 하라.”고 하여, 북을 쳐서 나아가고 나이순으로 앉는 태학의 예제에서 성대했던 옛 시절의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기에 식당에서 기꺼이 유생들과 함께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식당례는 꼭 태학 유생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일반 사회의 각종 차별 관행에서 벗어나 나이에 따라 존중하고 양보하는 새로운 문화를 익히는 것은, 모든 학교의 학생들에게 필요한
 
가르침이었다. ―3부 〈학례: 공교육 정상화의 노력과 태학 예제의 정비〉(190~191쪽) 중에서
 
정조가 바람직하게 여긴 신하의 ‘분의(分義)’
정조는 송시열이 ‘춘추의리’로 효종과 마음을 같이하였던 사실을 거론하며 그를 효종 묘정에 배향하지 않은 일을 조정의 궐전이라 평가했다. 효종과 송시열이 ‘의합(義合)’ 즉 의리로 서로를 인정한 군신 관계였다는 점에 주목한 것이다. 정조는 주자와 송시열을 시대를 뛰어넘어 서로 이은 듯 마음을 같이한 사람이었다고 평가했는데, 송시열이 주자보다 나은 점은 함께 의리를 도모할 군주를 만났다는 사실이라고 하기도 했다. 의리가 있다면, 마음을 다해 따르며 잡목이 우거진 길을 개척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정조가 늘 신하들에게 요구한 바였다. 이것이 바로 정조가 말한 신하의 ‘분의(分義)’였고, 그 ‘분의’가 바로 정조가 바람직하게 생각하는 문신의 충이었다.
―4부 〈방례: 국가례의 시행과 왕조 이상의 설득〉(221쪽) 중에서
 
오랑캐를 이기는 진정한 방법
천자와 제후의 신뢰가 사라지고 힘으로 위협하여 굴복시키는 패권적 세계 속에서도 정조는 이이제이의 방법을 말하지 않았다. 거짓으로 속이고 모면하는 예제를 쓰는 것은 오랑캐를 이기기 위해 진짜 오랑캐가 되는 방법이었다. 오랑캐에게 이긴 후의 세상이 다시 오랑캐의 세계라는 것만큼 허무한 일은 없다. 천하 만민이 더불어 살아가는 세계를 만들고자 했던 고대 성왕의 인의의 정치와 인의의 국제 정치(사대교린)의 방법을 조선 땅에서 충신 독경하게 보존하는 것, 자격이 없는 상대에게도 충신하고 독경하게 대함으로써 자신을 잃지 않는 것, 그것이 정당한 천자가 사라진 시대에 제후왕 정조가 선택한 천하례의 실천 방법이자 복수의 방법이었다.
―5부 〈천하례: 대명의리와 정조의 사대예설〉(295쪽) 중에서
 
예교 정치를 통해 조선의 대변통을 꿈꾸다
정조는 조선의 대변통을 꿈꾼 개혁군주였다. 문제는 개혁의 방향성과 기준이었다. 정조는 왕과 몇몇 사람의 노력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고 보았다. 만민에게 더불어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을 길러주고 가르쳐서 자율적인 도덕주체로 변화시키고, 도덕감정에 맞는 자발적 실천들이 누적되어야 선정에 이를 수 있다고 보았던 주자학적 예교론에 공감했다. 그러면서도 앞서의 예제를 고수하지 않고 가례, 향례, 학교례, 국가례, 천하례의 영역에서 적극적으로 예제변통을 시도했다. …… 정조대 예교의 정치를 어떤 역사적 자산으로 삼을 것인지는 우리 시대가 풀어야 할 과제이다.
―맺음말 〈만민의 마음을 기르는 제도와 정치〉(297쪽) 중에서

저자소개

김지영 (저자)
서울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석사 및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책임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조선시대 국가 의례에 대한 공부에서 출발해 예치론에 기반한 국가 통치, 정치 문화, 일상 문화로 연구 분야를 확장하고 있다. 주요 논저로 〈예교의 가늠자─조선시대 경상도 지역 지리지 풍속조 연구〉, 〈조선시대 사위의례에 대한 연구〉, 《왕실의 천지제사》(공저), 《즉위식, 국왕의 탄생》(공저), 《조선의 국가의례, 오례》(공저), 《길 위의 조정》, 《숙종대왕 이순의 성인식》, 《대한제국의 전례와 대한예전》(공저) 등이 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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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론 ‘정조학 총서’를 펴내며|책을 펴내며

머리말 정조의 조선 예제 인식과 변통론

1부 가례: 정조의 제한적 가례 인식과 효치론
1. 정조대 궁원제와 가례 인식: 사도세자 추숭반대론
2. 효제와 공도, 가인의 의리와 공공성: 골육상잔의 비극으로부터 왕실 구하기

2부 향례: 지방의 자발적 도덕화에 대한 기대와 《향례합편》
1. 향례에 담긴 예교 인식과 국조 향례의 전통
2. 교속의 천명과 《향례합편》의 편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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