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박이말을 사랑한 국어학자 김수업의 마지막 저작
지은이는 2012년 4월부터 2016년 11월까지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 회보인 《우리 말과 삶을 가꾸는 글쓰기》에 백석의 시 101편을 다룬 글들을 연재했다. 지은이는 한평생 토박이말을 살려 쓰는 일에 온 힘을 다했는데, 토박이말로 아름다운 시를 쓴 백석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를 그리며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연재가 끝난 뒤 제자들이 지은이에게 여러 차례 책으로 내기를 권했으나, 지은이는 다섯 해 가까이 나누어 실은 글이라 책이 되려면 손을 봐야 한다고 했다. 그러다 미처 손을 보지 못하고 2018년 돌아가셨다.
《백석의 노래》는 지은이의 제자들이 지은이가 연재했던 글들을 모아 다듬고 정리한 책이다. 지금까지 백석의 시를 엮은 책들이 꽤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지은이의 글을 굳이 책으로 묶은 까닭은, 지금까지 나온 백석 시집들보다 훨씬 더 풍성하게 백석의 시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이 지닌 특징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지은이의 ‘말뜻 풀이’는 사전 풀이에 그치지 않는다. 사전에서 풀이하는 말뜻에 말의 뿌리를 붙이기도 하고 비슷한 낱말을 가려 풀기도 하며, 낱말이 품은 겨레의 삶과 문화와 마음까지 담았다. 낯선 토박이말이 많아 어렵게 느껴졌던 백석 시를 좀 더 쉽고 깊게 읽을 수 있도록 했다.
둘째, 시 하나하나를 지은이의 눈으로 읽어낸 ‘군소리’는 시의 겉모습과 속살을 하나로 얽어 시가 지닌 속뜻과 시를 읽은 방법을 알려준다. 시어와 시구, 연과 행의 짜임과 흐름을 꼼꼼히 살피면서 노래하는 세상에 발을 딛고 살아가는 시인의 마음을 더듬어 시에 담긴 삶의 진실을 찾는다. 지은이가 시를 읽어내는 방식은 시를 좋아하고 시를 가르치는 사람들에게 문학작품을 읽는 하나의 방법을 제시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셋째, 지은이는 백석이 남녘에서 내놓은 시들을 차례대로 모두 보여주고자 했다. 처음 보는 낯선 시에서는 백석이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하고 섬세한 눈을, 익히 보았던 시에서는 지은이가 백석을 바라보는 따뜻하고 깊이 있는 눈을 읽을 수 있다. 백석의 시를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수준 높은 재미를 줄 수 있을 것이다.
백석의 시 전편(101편)을 읽어낸 유일한 저작
지은이는 ‘요즘말로 읽는 백석의 노래’라는 제목으로 연재 글을 싣기 시작하여 ‘우리 말과 삶의 곳간인 백석의 노래’, ‘거룩한 겨레 삶과 말의 곳간인 백석의 노래’, ‘겨레의 땅·사람·삶을 속살까지 어루만진 백석의 노래’로 제목을 고쳐오면서 백석의 시 101편 모두를 다루었다. ‘백석의 노래-말뜻 풀이–군소리’의 짜임새로 글을 쓰면서, 많은 사람들이 좀 더 쉽게 백석의 시를 맛보기 바랐다.
백석의 시가 많은 이에게 사랑받고 있지만, 백석의 시를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시 속에 낯선 토박이말이 많이 나오는 것이 첫 번째 까닭일 것이고, 생각이나 시간의 흐름을 건너뛰거나 끊어버려 시 속에 숨은 뜻을 알아채기 힘들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지은이가 백석을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까닭은 ‘토박이말’을 가장 잘 살려 쓴 시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지은이에게 백석 시에 담긴 토박이말은 반가운 존재였을 테고, 그 뜻을 밝혀 많은 사람이 나날의 말글살이에서 두루 쓸 수 있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지은이는 백석의 시에 담긴 토박이말들을 하나하나 정성 들여 풀이했다. 낱말뿐 아니라 뜻을 알기 어려운 시구들도 거의 다 풀이해 놓아 백석 시를 읽어내는 어려움을 덜어주고 있다.
지은이의 눈으로 시를 읽어낸 ‘군소리’는 지금까지 보았던 시에 대한 해석과는 차원이 다르다. 낱말과 월, 묶음의 짜임과 흐름을 꼼꼼히 살피는 것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읽으면서 저절로 고개가 끄덕거려질 만큼 탁월하고 놀라운 내용으로 풀어낸다. 형식과 내용을 같이 살펴야 한다고 말하지만, 흔히 우리는 문학작품의 내용이나 주제에만 주목하는 경우가 많다. 지은이가 작품의 짜임새와 겉모습을 바탕으로 시를 읽어내는 방식은, 시를 즐겨 읽거나 시를 가르치는 사람들이 참고해 보면 좋겠다.
백석의 시를 모아놓은 시집, 백석의 시를 모으고 낱말 풀이를 곁들인 시집 등 백석의 시를 다룬 시집이 그간 적지 않게 출간되었다. 그러나 백석이 시 전편을 다루면서 낱말 풀이와 해설을 모두 덧붙인 책은 없었다. 그만큼 백석의 시 전편을 읽어내는 것이 만만치 않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토박이말을 사랑한 시인과 국어학자의 만남, 그 운명적 만남이 《백석의 노래》를 낳았다.

김수업 (저자)
1939~2018. 경남 진주에서 나고, 경북대학교 사범대학과 대학원에서 공부하여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경상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교수를 거쳐 대구가톨릭대학교 총장으로 공직을 마쳤습니다. ‘배달말학회’, ‘모국어교육학회’를 학문의 터전으로 삼았으며, 《배달문학의 길잡이》(1978), 《국어교육의 원리》(1989), 《논개》(2001), 《배달말꽃, 갈래와 속살》(2002), 《국어교육의 바탕과 속살》(2005), 《말꽃타령》(2006), 《배달말 가르치기》(2006), 《우리말은 서럽다》(2009), 《한국의 프란치스코 김익진》(2012) 같은 책을 지었습니다. ‘(사)전국국어교사모임’의 일을 거들며 ‘우리말교육연구소’를 일으켜 우리말교육대학원장, 우리말교육현장학회장을 맡았고,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공동대표, 문화체육관광부 국어심의회 위원장, ‘겨레말살리는이들’ 세움이로 우리말 살리기에 힘을 썼습니다. 고향에서 ‘(사)진주문화연구소’ 이사장으로 지역문화와 교육을 일으키는 일을 하다가 2018년 6월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2018년 10월 9일 한글날을 맞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보관문화훈장’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