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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쓴 오백년 고려사 - 역사학자 박종기의 정통 고려 역사

박종기(저자) | 휴먼역사 | 25,000원 | 2020.03.02 | 464p | ISBN : 9791160803242 | 03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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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쓴 오백년 고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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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1999년 초판 출간 후 20년 동안 고려사 분야 최고 교양서 자리를 지키며 대학에서 고려사를 배우는 학생들과 고려사를 처음 접하는 독자들의 길잡이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베일에 가려져 있던 고려왕조를 다원사회로 재해석해 고려사에 대한 관심을 일깨우고 누구라도 이해하기 쉽도록 생생하게 고려사를 서술함으로써 고려사 대중화에도 이바지했다. 고려의 다원성과 개방성, 역동성을 적극적으로 드러내어 한국사에서 ‘또 하나의 전통’으로서 고려사가 지니는 의미를 되살렸다는 점에서도 큰 주목을 받았다. 이번 전면개정판에서는 그동안 진척된 고려사 연구성과에 발맞추어 잘못 알려졌던 사실을 바로잡고 최신 연구성과를 반영해 한층 더 풍부한 고려 다원사회의 모습을 그려냈다. 역사학자 박종기의 30여 년에 걸친 고려사 연구성과와 ‘역사’로 대중과 소통하려는 바람이 오롯이 담긴 이 책을 통해 고려왕조 500년의 살아 숨 쉬는 역사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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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우리 사회를 만든 ‘또 하나의 전통’
고려왕조 500년의 역사를 만나다!
 
이 책은 1999년 초판 출간 후 20년 동안 고려사 분야 최고 교양서 자리를 지키며 대학에서 고려사를 배우는 학생들과 고려사를 처음 접하는 독자들의 길잡이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베일에 가려져 있던 고려왕조를 다원사회로 재해석해 고려사에 대한 관심을 일깨우고 누구라도 이해하기 쉽도록 생생하게 고려사를 서술함으로써 고려사 대중화에도 이바지했다. 고려의 다원성과 개방성, 역동성을 적극적으로 드러내어 한국사에서 ‘또 하나의 전통’으로서 고려사가 지니는 의미를 되살렸다는 점에서도 큰 주목을 받았다. 이번 전면개정판에서는 그동안 진척된 고려사 연구성과에 발맞추어 잘못 알려졌던 사실을 바로잡고 최신 연구성과를 반영해 한층 더 풍부한 고려 다원사회의 모습을 그려냈다. 역사학자 박종기의 30여 년에 걸친 고려사 연구성과와 ‘역사’로 대중과 소통하려는 바람이 오롯이 담긴 이 책을 통해 고려왕조 500년의 살아 숨 쉬는 역사를 만날 수 있다.

이 책은 고려왕조의 역사가 우리 역사 연구에서 여전히 불모지나 다름없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것이기도 하다. 한국사 개설 강의 때마다 강사들이 알찬 강의를 다음번으로 미루는 최우선 ‘고려(考慮)’ 대상이 고려사라는 한 연구자의 우스갯소리처럼, 고려왕조의 실상은 역사 연구자들에게조차 잘 알려지지 않은 분야이다. …… 이 책은우리의 의식과 행동 속에 알게 모르게 잠재된 ‘또 하나의 전통’을 복원하여 역사 인식의 지평을 넓히는 데 힘을 쏟았다. 역사 이해의 효용성을 일깨우는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화두가 이 책을 통해 다시 한번 확인되었으면 하는 것이 필자의 간절한 바람이다. ―〈초판(1999년) 서문〉 중에서(6~7쪽)
 
역사학은 인간과 사건의 근원과 전개를 밝히는 인과의 학문이다. 한곳에 치우치지 않는, 역사학적 상상력에 기초한 열린 시각만이 역사학과 역사 인식의 수준을 높일 수 있다. 고려왕조의 역사 또한 역사학적 상상력을 얻고 기르는 데 부족함이 없는 연구 분야이다. 개정판 출간을 결정하게 된 것도 역사 연구와 인식에서 균형추가 필요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역사에 대한 대중의 관심과 사랑도 역사학이 존재하는 또 하나의 이유다. 그런 만큼 역사학의 연구성과를 대중과 공유하면서 역사의 세계를 탐구하고 여행하고픈 필자의 자그마한 바람이 이 책을 통해 실현되었으면 한다. 또한 …… 이 책이 조화와 상생의 다원주의 가치로 새롭게 주목받는 고려왕조의 세계를 탐색하는 길잡이가 되었으면 한다. ―〈전면개정판 서문〉 중에서(13쪽)
 
 
1.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는 고려왕조의 참모습을 만나다
 
고려왕조 500년 역사는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그야말로 베일에 가려져 있는 역사다. 이 책의 초판이 출간된 1999년과 비교해도 여전히 고려사에 대한 인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듯하다. 여전히 ‘한국사’ 하면 고구려·백제·신라 3국과 조선왕조를 먼저 떠올리고, ‘전통’하면 조선에서부터 전해져온 문화와 관습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한국 역사의 자랑스러운 면을 떠올려보라 하면 한국인 대부분이 고려왕조의 문화유산과 대외정책을 이야기한다.
 
 
이 책의 취지는 한국인의 의식과 행동에 알게 모르게 잠재된 ‘또 하나의 전통’인 고려왕조 500년의 역사를 복원하여 역사 인식의 지평을 넓히는 데 있다. 이 책은 고려사 개설서로서 고려왕조 역사 전반을 다루지만, 다른 고려사 개설서와 달리 고려왕조에 대한 개괄적인 지식을 단순히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고려왕조가 우리 역사에서 차지하는 위상과 고려왕조의 전통과 문화가 오늘날 한국 사회에 무엇을 남겼는지 그 의미를 살피는 데에도 초점을 맞추고 있다. 고려의 제도와 사건, 인물 등을 고구려·백제·신라 3국 및 조선과 비교하여 고려왕조만의 전통과 문화를 뚜렷이 보여주며, 고려왕조의 특성인 다원성과 개방성, 역동성에 주목하여 한국 역사 속 고려사의 의미를 되살린다.
 
고려왕조가 베일에 가려진 채 대중으로부터 외면당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 《조선왕조실록》에 언급된 역사 사건의 현장이나 유물은 대부분 조선의 수도였던 서울과 그 주변 지역에 몰려 있어 마음만 먹으면 쉽게 찾아가 볼 수 있지만, 고려의 주요 유물과 유적은 고려의 수도 개경 곧 현재 북한 땅인 개성에 몰려 있어 현실적으로 접근이 불가합니다. …… 《조선왕조실록》처럼 당대에 작성된 1차 자료가 없다는 사실도 고려의 역사가 멀게 느껴지게 된 원인의 하나입니다. …… (《고려사》나 《고려사절요》)를 편찬하는 과정에서 조선 초기 역사가들의 시각이 반영되어 고려의 실제 모습이 크게 훼손된 한계를 갖고 있습니다. …… 이 기록을 그대로 수용할 경우 조선의 시각에서 고려왕조를 평가하게 되어 고려사의 진실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게 됩니다. ―〈1부 1장 시대 개관과 왕조의 특성〉 중에서(72~73쪽)
 
고려왕조의 건국과 후삼국 통합은 기존 지배층의 전면적인 교체와 한반도 천년 통일국가의 수립을 알리는 신호탄이었습니다. 한반도에 처음으로 통일국가를 수립한 신라의 경우 기존의 지배층인 진골귀족이 통일 후에도 지배층의 지위를 유지했고, 조선왕조는 고려 후기 지배층인 무신 집단과 사대부 세력이 건국을 주도했습니다. 두 왕조의 통일 혹은 건국 과정에서 지배층의 전면적인 교체는 없었지요. 반면에 고려는 신라 말에 새롭게 대두한 지방의 호족세력이 통일신라 지배층인 중앙의 진골귀족을 넘어뜨리고 세운 나라입니다. 지배층이 중앙의 진골귀족에서 등장한 지 얼마 안 된 지방의 호족세력으로 전면 교체된 것이지요. 후삼국 통합전쟁을 승리로 이끈 것도 호족세력이었습니다. 이 점에서 고려왕조는 혁명적인 왕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1부 1장 시대 개관과 왕조의 특성〉 중에서(25~26쪽)

고려왕조는 옛 삼국의 다양한 사상과 문화를 통합하고 포용해 새로운 문화를 창조했습니다. 사실 신라는 고구려와 백제를 정치적으로 통합했을 뿐 고구려나 백제의 다양한 인적 자원이나 문화적인 요소를 통합하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태조는 〈훈요십조〉에서 불교가 고려 건국에 큰 역할을 했음을 인정하면서도 …… 풍수지리와 제천 행사를 강조하고, 유교 이념에 입각한 제도의 확립을 당부했습니다. 이후 고려 왕실이나 관청 등의 행사에는 불교뿐 아니라 도교·유교·제천 의식이 아무 거리낌 없이 시행되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고려왕조 초기에 이미 다양한 종교와 사상이 공존하면서 새로운 문화가 창조되기 시작했음을 보여줍니다.
―〈1부 1장 시대 개관과 왕조의 특성〉 중에서(26~27쪽)
 
다원사회의 또 다른 특성은 사회와 경제 면에서 나타나는 개방성과 역동성입니다. 고려 사회는 우리 역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하층민의 운동과 정치적 진출이 활발했고, 그에 따라 신분 이동 또한 매우 활발했던, 역동성을 지닌 사회였습니다. …… 한편 수도 개경 인근의 벽란도를 비롯한 서해안 일대는 당시 송·거란·여진뿐 아니라 멀리 아라비아의 상인들까지 드나드는 동아시아 무역의 중심지였습니다. 이는 고려왕조가 대외무역을 용인하고 나아가 장려하는 개방적인 자세를 취했기 때문입니다. 개방성은 고려의 국력을 융성하게 했을 뿐 아니라, 문화의 번성에도 큰 역할을 했습니다.
―〈1부 1장 시대 개관과 왕조의 특성〉 중에서(54~55쪽)
 
2. 고려사에 대한 오해와 잘못된 시각을 바로 잡다
 
고려왕조에 대한 관심의 부족은 오해와 잘못된 시각을 불러왔다. 그동안 일반 대중은 물론, 고려사 연구자들조차 고려왕조를 좀 더 성숙한 중세사회인 조선왕조로 나아가는 과도기로 이해해온 경향이 있다. 이 책은 기존의 고려사 연구와 해석을 비판적으로 살피며, 잘못 알려진 사실과 고려왕조를 바라보는 그릇된 시각을 바로잡는다.
예를 들어 고려왕조를 전기·후기로 구분하던 기존의 시기 구분 대신 전기·중기·후기 3시기로 구분하여 단순화되었던 역사 속 사건들의 시대적 배경을 촘촘히 살피고 각 시기의 특성과 차별성을 짚어낸다. 또, 고려의 대외관계 측면에서 거란과의 전쟁을 서희나 강감찬 같은 인물을 내세워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임을 강조하거나 작은 군대로 적의 대군을 무찌르고 영토를 수호했다는 점만 강조하거나 원의 지배에 대해 부정적인 측면만을 강조하는 등 민족주의적인 일방적 관점의 해석이 아닌 좀 더 넓은 국제적인 시각으로 사건을 해석한다. 이외에도 불교 국교설과 근친혼, 본관제, 사대주의, 가족제도와 상속제도 등 흔히 고려 역사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것들을 되짚으며 고려왕조의 역사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한다.
 
1259년 원과 강화를 맺기 전까지 고려는 정복과 약탈을 특징으로 하는 전통적인 유목제국의 대외정책에 철저하게 저항했습니다. 이 시기 몽골제국이 강력한 기동력과 전술로 고려를 압박하기 시작하면서, 등거리 실리 외교라는 고려 전기의 전통적인 외교 전략이 무너지고 새로운 유형의 전략이 등장했습니다. …… 밀리면서도 결코 모든 것을 양보하지 않으며 원칙을 지켜나가는 고려의 대외 전술은 오늘날의 ‘벼랑 끝 외교’ 전술을 연상케 합니다. 이 시기 고려는 대제국 몽골에 맞서 한편으로 협상하고 한편으론 저항하면서, 내부적으로는 무려 16년 가까이 고려대장경 조성이라는 거대한 국책사업을 추진하여 국력을 결집했지요. 물론 내륙의 민이 원의 말발굽 아래 짓밟히는 고통을 외면한 채 지배층이 섬으로 옮겨간 사실은 달리 평가해야 할 것입니다. 어쨌든 당시 몽골에 대한 고려의 외교 전술은 고려 전기 이래 대외정책의 연장선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1부 3장 다원적 국제 질서 속의 고려왕조〉 중에서(206~207쪽)
 
고려 왕실의 혼인 풍습과 그 변화는 고려 왕실의 특성, 나아가 고려왕조의 특성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합니다. 고려 초에는 왕의 배우자를 왕실 바깥에서 찾았습니다. 태조의 경우 처음에는 지방의 부유한 집안과 …… 혼인 관계를 맺으면서 세력 기반을 확대해나갑니다. …… 다시 말해 통일전쟁기에는 경제력이나 군사력이 있는 집안과 결혼 동맹으로 세력을 확장하고, 통일 후에는 신라의 왕족과 혼인하여 왕실의 정통성을 확보하려 했습니다. 혼인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것이지요. …… 그러다가 왕족이 불어나자, 고려 왕실은 왕실 내부의 근친혼을 통해 왕실의 권위와 경제적 기반을 지키는 쪽을 선택하게 됩니다. 제4대 광종 때부터 근친혼이 왕실 혼인의 관행으로 나타나게 된 이유입니다. 그러나 근친혼도 왕실을 위한 정치적 선택이었다는 점에서 태조·혜종·정종 대 국왕의 혼인과 근본 목적이 같았다고 볼 수 있죠.
―〈2부 1장 고려를 통치한 사람들〉 중에서(227~228쪽)
 
불교가 고려의 국교임을 당연시하는 글들은 주로 태조 왕건이 작성한 〈훈요십조〉를 그 근거로 인용합니다. …… 제1조의 “고려왕조는 여러 부처가 보호해주는 힘을 입어 건국되었다”라는 …… 구절은 고려왕조 개창에 불교가 커다란 역할을 했음을 알려주는 내용이라 불교 국교설의 유력한 근거로 많이 인용되어왔습니다.
그런데 제1조의 나머지 내용을 보면, 해당 조를 작성한 취지가 뒷날 간신과 승려가 서로 결탁해 사원의 소유권을 빼앗는 등 불교가 낳을 수 있는 폐단을 경계하는 데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불교 국교설이
 
자주 인용하는 〈훈요십조〉의 몇 개 조항은 불교가 고려의 국교라는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태조가 〈훈요십조〉에서 불교를 상대적으로 많이 언급한 것은 왕조 개창에 크게 이바지한 불교가 뒷날 일으킬지도 모를 폐단을 경계하려는 뜻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불교가 고려왕조 내내 다른 어느 종교와 사상보다 우위에 있었으며 정치?경제 등 여러 측면에서 커다란 역할을 한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2부 2장 다양성과 개방성이 조화를 이룬 문화와 사상〉 중에서(314~316쪽)
 
현재 고려사를 이해하는 기본적인 틀은 전후 일본인 연구자들이 만들어놓은 것입니다. 한국사 연구에 일본인 연구자들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가를 잘 보여주죠. 그중에서도 하타다 다카시는 오늘날까지도 고려사 연구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일본인 연구자입니다. …… 실제로 국내 고려사 연구자들의 연구 방법론이나 연구 주제 중에는 일본인 연구자들의 방법론이나 주제와 매우 유사하거나 심할 경우 모방한 것이 적지 않습니다. 그만큼 그들의 이론이 알게 모르게 국내의 고려사 연구자들에게 영향을 끼친 것이죠. 그러나 1980년대 이후 국내 연구자들의 고려사 연구가 본격화되면서 일본인 연구자들이 내세운 이론의 한계와 결함이 여러 차례 지적되었고, 지금은 거의 극복된 상태입니다.
―〈2부 2장 다양성과 개방성이 조화를 이룬 문화와 사상〉 중에서(353~354쪽)
 
 
3. 전면개정판, 무엇이 바뀌었나: 최신 연구성과에 발맞춘 고려사 대표 개설서
 

이 책의 초판을 발간한 이후 20년 동안 역사학은 물론 고려사 연구는 눈부신 성과를 거두어왔다. 그에 발맞추어 고려사 분야의 최신 연구성과를 반영하고 잘못 알려졌던 사실들을 바로 잡았다. 이번 전면개정판은 고려왕조를 ‘또 하나의 전통’으로 되살려내고, 그 전통이 현재와 어떻게 접목되는지를 밝혀 우리 역사에 대한 이해와 인식의 지평을 넓히고자 구성과 내용을 크게 수정, 보완했다. 새롭게 구성한 부의 주제에서 주제를 벗어나지만 읽고 생각해볼 만한 기존의 글은 ‘깊이 읽기’로 남겼다.
1부 〈다원사회 고려를 만들다〉에서는 고려의 정치·경제·외교에 관한 내용을 모아 고려 다원사회의 뼈대를 이루는 여러 구조적 특성을 정리해 어렵게만 느껴지던 고려의 다양한 사회·경제 제도들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했다. 또 고려 전기 대외정책의 핵심으로서 100년여간 거란과 벌인 영토 분쟁 과정을 설명하고, 고려와 원 관계의 전환점으로서 삼별초 항쟁과 이를 전후한 역사를 새롭게 서술하는 등 다원적인 국제 질서의 특성과 본질이 고려왕조의 건국과 발전에 끼친 영향을 새롭게 조망했다.
2부 〈역동적인 삶을 살다〉에서는 고려 사람들의 삶과 문화, 사회적 측면을 살핀다. 고려의 국왕과 관료, 민의 존재 형태와 더불어 하층민의 정치적·사회적 진출과 민의 항쟁 등 역동적인 삶의 모습을 적극적으로 발굴해 소개했다. 문화적인 면에서는 고려왕조의 다원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문화유산의 문화적·기술적 특성을 추가로 서술했는데, 고려의 개방정책에 힘입어 동아시아 세계의 보편성을 접하면서 고려의 정체성을 자각하고 새로운 문화와 문명을 창조해가는 과정을 살펴볼 볼 수 있다. 고려시대 역사 인식과 역사서 편찬에 대해 새로 집필한 2장에서는 고려의 역사 인식을 ‘다원주의 역사 인식’으로 규정하고 원의 고려 지배 이후 성리학 중심의 ‘일원주의 역사 인식’에 의해 그 특성이 변화하는 과정을 자세히 설명하여 고려에서부터 조선 건국까지 사상의 흐름도 한눈에 살필 수 있다.
 
 
 
고려왕조 때는 실록 외에도 다양한 역사서가 편찬되었습니다. 이러한 역사서들에는 유교와 불교, 풍수지리와 도참사상 등 당대에 유행한 많은 사상과 이념이 담겨 있었습니다. 유교 사관과 불교 사관은 물론, 신화와 전설까지 역사 서술에 포함하는 신이(神異, 신기하고 이상함) 사관이 서로 충돌하지 않고 공존했던 것입니다. 이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다원주의적인 역사 인식이하, 다원주의 역사 인식’이라 할 수 있지요. 다원주의 역사 인식은 원 간섭기 이후 성리학 중심의 역사 인식이 등장할 때까지 이어집니다. …… 광종 때 신이 사관을 반영한 《삼국사》가 편찬되었고, 12세기에는 《편년통록》 같은 신이 사관 계열의 역사서가 국왕에게 바쳐졌으며, 13세기에도 《해동고승전》 같은 불교 사관의 역사서가 왕명으로 편찬될 정도였습니다. 원 간섭기 이전 고려에는 다양한 이념과 사상 체계에서 기원한 다양한 역사관이 공존했던 것입니다.
―〈2부 2장 다양성과 개방성이 조화를 이룬 문화와 사상〉 중에서(336, 343쪽)
 
고려의 호주제는 조선, 아니 십여 년 전까지 남아 있던 우리의 호주제와 비교해도 놀랍습니다. 먼저 조선시대의 호구단자나 호적을 보면, 호주는 예외 없이 남성이며 노비도 남성인 호주의 소유로 등재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고려의 호구단자에는 노비의 소유주를 어머니 쪽과 아버지 쪽으로 구분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성도 남자 형제와 다름없이 부모로부터 균등하게 노비를 포함한 재산을 상속받았고, 이 재산이 결혼 후에도 남편과 시댁에 귀속되지 않고 본인의 재산으로 유지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지요. …… 고위 관료나 공이 있는 관료의 자손에게 관직 진출의 특혜를 베푸는 음서제를 적용할 때도, 아들이 없는 관료의 경우 딸의 자손에게도 음직이 계승되었습니다. 여성이 재산 상속·호주·제사의 주체가 될 수 있는 사회였기에 가능했던 일이었지요. ―〈2부 2장 다양성과 개방성이 조화를 이룬 문화와 사상〉 중에서(360~362쪽)
 
고려 중기 이후 민은 한국사의 어느 시기보다 약동했고, 역사 전개에도 커다란 영향을 끼쳤습니다. 필자는 이를 ‘분출하는 민의 힘’으로 표현하고자 합니다. 그 힘의 원천은 민이 생산력의 한계와 자신들에게 가해진 사회적 규제의 부당함을 자각하고, 새로운 사회에 대한 희망을 품기 시작한 데서 찾을 수 있습니다. 고려 중기 이후 민의 약동은 두 가지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는 ‘유망과 항쟁’이고, 다른 하나는 ‘지배층 진출’입니다. …… 고려의 민은 항쟁에 앞서 ‘유망’을 합니다. 유망은 자기 거주지를 벗어나 다른 지역으로 도망하는 소극적인 형태의 저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부 3장 역동적인 하층민의 삶과 사회 진출〉 중에서(395쪽)
 
원 간섭기 이후 지배세력 충원은 과거나 음서를 통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몽골어에 익숙한 역관, 일본 원정 등에서 공을 세운 군인, 원나라에서 생활하는 고려 왕족을 가까이에서 보필한 시종 신료, 원 황실에서 환관이 되거나 공주가 된 고려인들의 가족이나 친인척이 고려에서 지배세력으로 많이 진출했습니다. 학문적 능력보다는 원 황실에 공을 세우거나 고려 국왕의 측근이 되는 편이 권력과 가까워지는 데 유리했던 것이지요. 자연히 가계에 흠이 있거나 신분이 미천한 사람에게도 지배세력이 될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역관 출신으로 출세한 대표적인 인물은 부곡인 유청신(柳淸臣)입니다. 고려시대 이직(吏職)의 하나인 부곡리는 큰 공을 세운다 해도 5품 이상의 관직에 오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유청신은 원의 일본 원정과 1287년(충렬왕 13) 원나라 황족 나얀의 반란 때 통역 업무를 잘 처리한 공을 인정받아 3품인 대장군으로 승진합니다. 1297년에는 놀랍게도 재상의 자리에 올랐지요. 유청신은 충선왕의 세자 시절 세자를 보필하며 함께 원나라 황제 쿠빌라이를 알현하고 정치 현안을 논의할 정도로 황제의 총애를 받았습니다. ―〈2부 3장 역동적인 하층민의 삶과 사회 진출〉 중에서(411~412쪽)

저자소개

박종기 (저자)
30년간 고려사 연구라는 한길을 걸으며 ‘역사’를 주제로 대중과 함께 호흡하길 원하는 역사학자. 전통과 현대의 접목, 역사와 현실의 일체화를 통한 새로운 역사상을 수립하는 데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고려사 연구를 해왔다. 현재 ‘고려 다원사회론’을 통해 잊혔던 고려왕조의 개방적이고 역동적인 역사를 되살리는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인간이 주체가 되는 역사를 쓰는 것이 꿈이라는 그가 이번에는 《고려 열전》으로 천 년 전 고려시대를 살았던 인간의 삶에 숨을 불어넣는다. 건국 영웅과 명장 들의 이야기는 물론 귀화인과 하층민, 여성 들의 이야기까지……. 거대한 제도와 구조에 파묻힌 인간의 역사를 발굴해 상상력을 자극하는 고려사를 들려줄 것이다.
서울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에서 고려시대 부곡인과 부곡 집단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민대학교 교수, 한국역사연구회 및 한국중세사학회 회장을 지냈으며, 현재 역사 대중서 집필에 전념하는 역사 저술가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고려사의 재발견》(2015), 《고려의 부곡인, 〈경계인〉으로 살다》(2012), 《새로 쓴 5백년 고려사》(2008), 《안정복, 고려사를 공부하다》(2006), 《지배와 자율의 공간, 고려의 지방사회》(2002), 《고려시대 부곡제 연구》(1990), 《왕은 어떻게 나라를 다스렸는가》(공저, 2011)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고려사 지리지 역주》(2016)가 있다.

목차

목차 전체보기

1부 다원사회 고려를 만들다?정치·경제·외교 편

1장 시대 개관과 왕조의 특성
1 고려왕조 건국과 역사 전개
2 ‘다원사회’ 고려의 특성
〈깊이 읽기〉 고려사 연구와 해석의 문제

2장 다원사회의 기초가 된 조직과 제도
1. 사회 통합의 모델, 본관제
2. 중앙과 지방을 연결한 지배 조직,
군현제와 부곡제
3. 분할적인 재정·경제 구조
〈깊이 읽기〉 중앙과 지방을 연결한 제도와 유물

3장 다원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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