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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다 핀 꽃 -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 할머니들의 끝나지 않은 미술 수업 NEW

이경신(저자) | 휴먼역사 | 17,000원 | 2018.08.13 | 304p | ISBN : 9791160801477 | 03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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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다 핀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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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캔버스 앞에서 과거와 마주하며
긴 세월 감춰두었던 깊은 상처와 간절한 염원을
그림으로 쏟아내던 순간,
할머니들은 그 누구보다 밝고 맑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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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어눌한 선으로 그려진 꽃들과 얼굴을 가린 채 울고 있는 소녀, 삐뚤빼뚤한 군인들의 모습. 마치 아이들이 그린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 숨겨져 있는 영혼의 떨림과 마주하면 차마 외면할 수 없는 형상들, 바로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 할머니들이 그린 그림이다.
이 책은 1993년부터 1997년까지 5년 동안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 할머니들의 ‘첫 미술 선생’이었던 이경신 작가가 할머니들과 함께한 미술 수업 이야기다. 저자가 할머니들과 보낸 시간을 기록하게 된 계기는 2015년 12월 28일 박근혜 정부의 ‘한일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였다. 여전히 공식 사과와 법적 책임을 회피하는 일본 정부와 그런 일본 정부 입장에 동조하며 피해자는 무시한 채 합의를 진행한 한국 정부에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 할머니들은 분노했다. 할머니들이 그림을 그리며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로서 깊은 상처와 끝없는 고통을 이야기하고,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의 본질을 세상에 알리려 한 모습을 옆에서 지켜본 저자 역시 참을 수 없는 분노에 무엇이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 책은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를 다룬 역사책이나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들의 증언을 들려주는 증언집이 아니다. 할머니들과의 서먹했던 첫 만남부터 난생처음 붓을 잡아본 할머니들의 순탄치 않은 그림 배우기 과정, 할머니들이 그림을 통해 자신들의 상처와 마주하고자 노력한 모습들을 차분하고 담담하게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온갖 망설임과 떨림을 이겨내고 하얀 캔버스 앞에서 과거와 마주한 할머니들의 이야기는 그 어떤 이야기 못지않게 가슴 먹먹한 역사를 들려준다. 또한 고 강덕경 할머니의 〈빼앗긴 순정〉과 〈책임자를 처벌하라〉, 고 김순덕 할머니의 〈못다 핀 꽃〉과 〈끌려감〉 등 이미 잘 알려진 그림들이 그려지게 된 배경과 숨은 이야기를 읽고 나면, 그림의 울림은 배로 다가온다.
할머니들의 그림은 1991년 고 김학순 할머니의 첫 증언으로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가 한국 사회에 알려진 이후 한일 과거사 문제, 여성 인권의 문제로 자리잡아가는 과정에서 기폭제 역할을 했다.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운동의 하나의 분기점이 되었다고 할 수 있는 할머니들의 그림과 그림이 그려진 과정, 그 의미를 최초로 기록했다는 점에서 이 책은 큰 의미를 가진다.
지독하고 끔찍한 고통과 분노, 좌절과 외로움 속에서 살아온 할머니들이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라는 굴레를 벗어나 새로운 삶에 도전하며 열정을 불태웠던 순간들을 통해 할머니들의 용기와 숨결을 생생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1. 1993년,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 할머니들의 첫 미술 수업이 시작되다.
―초짜 ‘미술 선생’과 할머니 학생들의 미술 수업 이야기

 
1993년 초, 저자 이경신은 미술 대학을 졸업하고 인생의 의미를 찾아 방황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대학 시절 신문에서 본 김학순 할머니의 결연한 의지로 가득 차 있던 눈빛을 떠올리고, 자원봉사자로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 할머니들이 함께 모여 사는 나눔의 집을 찾았다. 그리고 자신이 가진 ‘미술’이라는 도구로 할머니들이 스스로 변화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난생처음 붓을 잡아본 할머니들이 그림을 배우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할머니 학생들이나 미술 선생이나 ‘초짜’였던지라 느리지만 꾸준히 오랜 시간 미술 수업을 이어갔다. 초기 미술 수업은 특별한 목적 없이,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을 느끼기 위한 하나의 소일거리였다. 하지만 몇 년의 노력 끝에 할머니들은 그림을 그리는 데 마음을 붙이며, 당신들이 가슴속에 감춰두었던 상처에 조금씩 다가갈 수 있었다.
저자는 미술 수업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일은 할머니들의 상처를 그림으로 끌어내는 것이었다고 한다. 미술 선생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혼자 고민하고 있을 때, 할머니들은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수업을 이끌어갔다. 이용수 할머니의 적극적인 심상 표현 그림에 강덕경 할머니가 자극을 받아 자신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런 강덕경 할머니를 보며 김순덕 할머니도 분발했고, 나중에는 이용녀 할머니까지 합세했다. 그렇게 할머니들은 같은 아픔과 상처를 가진 동료로서, 함께 싸우는 동지로서, 그리고 선의의 경쟁자로서 서로 응원하고 격려하며 그림을 통해 스스로 상처를 치유하고 절망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살게 된 것이다.
할머니들과의 미술 수업이 끝난 20년이 지난 지금도 저자 이경신은 ‘할머니들의 미술 선생’이라 불린다. 미술 수업을 시작한 인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할머니들이 자신들의 상처를 그림으로 그려내기까지 옆에서 응원하며 노력한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은 할머니들의 이야기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강조한다. 할머니들이 남긴 그림은 지금도 할머니들의 상처와 비극적인 역사를 안은 채,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았음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2.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들의 고통과 염원이 그림으로 피어나다
―그림이 된 할머니들의 상처, 그 치유와 회복의 이야기

 
미술 수업이 거듭되고 할머니들과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서로 익숙해지자, 할머니들의 결코 치유될 수 없는 상처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잦은 다툼과 알코올 중독, 수집증, 불면증, 우울증 등 정신적 문제는 물론 오랫동안 앓아온 부인과 질병과 노환으로 인한 각종 병으로 매일 한 움큼씩 약을 삼켜야 했다. 저자는 그런 할머니들이 그림 그리기를 통해 자신의 상처와 마주함으로써 가슴속에 꼭꼭 묻어둔 고통과 분노를 조금이나마 덜어내길 바랐다. 쉽지 않았지만 할머니들은 과거의 상처와 고통, 두려움과 외로움을 도화지 위에 마구 쏟아냈다.

처음 그 출발선을 출발한 것은 이용수 할머니였다. 할머니들이 자신의 감정과 과거의 상처를 드러내기를 꺼려할 때, 외향적인 이용수 할머니는 심상 표현 수업에서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고 명확하게 드러냈다. 첫 심상표현 수업에서 〈내 마음 별과 같이〉, 〈무지개 붉은 입술〉, 〈복잡한 심정〉, 〈청춘〉을 잇따라 그리면서 다른 할머니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고, 미술 수업이 한 단계 발전하는 데 기여했다.
강덕경 할머니도 이용수 할머니를 보고 용기를 내기 시작했다. 강덕경 할머니는 미술 수업에 가장 열정적으로 참여했다. 할머니 일생에서 알지 못했던 그림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으로 그림 그리기에 깊이 빠져들었다. 할머니는 자유로이 하늘을 나는 새를 동경했는데, 그래서인지 할머니의 그림에는 새가 많이 등장한다. 일본군을 공격하는 것도, 해방의 소식을 전해주는 것도, 평화와 희망의 상징으로도 새를그려 넣었다. 〈빼앗긴 순정〉과 〈책임자를 처벌하라〉는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의 본질을 드러내고, 무책임한 일본 정부를 강력히 비판하는 그림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림에 자신이 없던 김순덕 할머니는 자신의 실력을 못마땅해했지만, 꾸준하고 성실하게 미술 수업에 참여했다. 그 결과 할머니만의 단순하면서도 순박한 느낌의 선을 만들어내며 〈그때 그곳에서〉, 〈끌려감〉 등 많은 그림은 그렸다. 그중에서도 〈못다 핀 꽃〉은 어린 시절 일본군에 끌려간 피해자 할머니들을 대변하는 상징이 되어, 슬픈 아름다움과 애잔한 정서로 큰 감동을 준다.
이용녀(1926~2013) 할머니는 대범하고 활달한 성격답게 머뭇거리지 않고 시원시원하게 그림을 그렸다. 관찰력도 좋아 그리는 대상의 특징을 잘 잡아냈다. 초기 데생 작품인 〈자화상〉에서 이러한 할머니의 장점이 잘 드러난다. 자신들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려내는 다른 할머니들에게 영향을 받아 〈끌려가는 조선 처녀〉, 〈목욕하는 처녀들〉 등의 그림을 남겼다.
 
할머니들은 상처를 쏟아낸 마음속 빈자리에 당신들의 인생에서 처음으로 맛보는 뿌듯한 설렘과 흥분, 만족감 같은 희망들을채워 넣었다. 그림을 그린다고 해서 과거 일어난 일을 되돌릴 수도 없고, 그 상처 또한 없어질 수도 없다. 하지만 할머니들에게 그림 그리기는 외면해온 고통을 마주하고 견딜 수 있는 힘을 기르는 한 방편이 되었다.
피해자의 고통스러운 자기 기록이자 자기 회복의 원동력이 된 그림 그리기는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 운동의 하나의 분기점이 되었음이 분명하다. 이는 비단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 문제뿐 아니라 전쟁과 각종 폭력에 희생된 피해자 문제에서 고통을 기록하고 스스로 회복하는 힘을 어떻게 만들어갈 수 있는지 하나의 예를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3. 책 속에서
 
생각보다 밝은 할머니들의 첫인상이 매우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때까지 나는 상처가 깊은 사람은 항상 우울할거라는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다. 일본군 성노예라는 참혹한 일을 겪은 분들이라면 더욱더 그럴 거라고 상상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내 고민의 깊이는 할머니들의 안타까운 삶에 대해
고작 며칠 생각한 것이 전부였다. 활자를 통해 접한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들의 삶을 혼자서 추측하며 마음껏 할머니들을 동정하고 염려했던
것이다. (중략) 나는 어정쩡한 태도로 나도 모르게 할머니들을 살피며
무엇인가를 찾고 있었다. 아마도 처음 신문에서 본 김학순 할머니의
눈빛 같은 강렬한 무언가를 찾았던 것 같다. 하지만 할머니들의 모습은
김학순 할머니와는 사뭇 달랐다. 과거의 상처는 어딘가에 꽁꽁
숨겨놓은 듯, 평온하게 일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할머니들로 보였다.
―<눈빛>(18~19쪽) 중에서
 
 
“이 나이에 뭔 그림이여.”
“늙어서 낼모레면 죽을 판에 이기 무슨 호사고.”
“치아라~ 머리 아프다.”
(중략) 나는 할머니들 앞에 놓인 미술용품을 보며 할머니들과 그림이라는
낯선 만남에 다시 한 번 신선한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나와 달리, 할머니들의 표정은
창밖의 새침한 봄 날씨를 더 닮아 있었다. 미술용품을 받아든 할머니들은 처음 갖게 된 물건에 대한 기쁨이나 호기심보다는 탐탁지 않은 마음을 감추지 않고 얼굴 표정에 드러냈다. 한마디로 모두 시큰둥했다.
―<떨리는 손>(25~26쪽) 중에서
 

오랜만에 대구에서 이용수 할머니가 올라오셨다. 멋쟁이 할머니답게 고운 차림 이었다. 할머니는 서울 나눔의 집에 올 때마다 미술 수업에 참여했다. 마침 심 상 표현을 해보는 첫날이었다.
(중략) (이용수 할머니는) 무엇이 생각났는지, 무지개 색 타원을 그리기 시작했다. 화면 왼쪽에 조금 작은 타원이, 오른쪽에는 조금 큰 타원이 그려졌다. 할머니는 붉은색 물감을 묻힌 붓으로 오른쪽 타원 위를 힘주어 꾹꾹꾹 찍었다. 다른 할머니들은 아직 무엇을 해야 할지 모 른 채 이 할머니가 붉은 점을 격하게 찍는 모습을 신기한 듯 바라 보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할머니는 왼쪽 타원 위에 ‘청춘’이라고 쓰 고 그림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잠시 생각에 잠기듯 눈을 감았 다 뜨더니, 그림 설명을 덧붙였다.
“왼쪽은 처녀 시절 내 깨끗한 모습이야. 어릴 적엔 참 곱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지. 이 오른쪽은 지금의 나인데, 상처를 많이 입었어.”―<붉은 입술>(73~75쪽) 중에서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를 다룬 화가들의 그림에 관해 강덕경 할머니와 이야기 하고 두 주쯤 지났을 때였다. 수업 준비를 하는데, 강 할머니가 조그만 스케 치북을 들고 머뭇거렸다. 할머니 눈에 쑥스러운 빛이 스쳤다.
“미술 선생, 나 이런 것 그려보고 싶어지데?”
그림을 보는 순간 헉 하고 숨이 멎고 감동이 밀려왔다. 할머 니의 인생이 꼬여버린 시작점을 표현한 그림이었다. 강 할머 니가 드디어 용기를 내어 꽁꽁 닫혀 있던 마음의 문을 열기 로 작정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작은 스케치를 보고 나 니, 나는 할머니의 이 중요한 그림을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남겨놓고 싶었다. 그래서 캔버스에 옮겨 그리기로 했다.
(중략) 정성 들여 만든 순결하고 깨끗한 캔버스. 강 할머니 는 그 앞에 마주 섰다. 아니, 열여섯살 때 일본인 선생의 권 유를 거부할 수 없어 큰 배를 타고 망망대해를 건넜던 그때, 근로정신대라는 이름으로 끌려가 하루 종일 비행기 공장에서 노동에 시달리며 어머니가 보고 싶어 울던 그때, 밥 세 숟가 락과 된장국, 콩떡 세 개로 하루하루를 연명하다가 탈출을 시도했던 그때, 얼마 못 가 붙잡혀 발가벗겨진 그때, 그 언 덕 앞에 마주 섰다. ―<빤스 하나 입히라>(138~138쪽) 중에서
 

“할머니, 무슨 고민이라도 있으세요?”
“미술 선생, 내가 일본군을 이렇게 쭈욱 그려야 되겠는데…….”
손으로 허공에 일자를 그으며 다짜고짜 일본군을 그리겠다는
김순덕 할머니의 이야기에, 그제야 할머니의 급한 마음이
보이기 시작했다. 강 할머니의 그림 〈빼앗긴 순정〉은
같은 상처를 가진 할머니들에게 큰 울림을 주기에 충분
했다. 그러니 같이 그림을 그리고 있는 김 할머니에게는
더욱 큰 자극이 된 것이 분명했다. (중략)
〈그때 그곳에서〉는 김 할머니가 처음 스스로 그려낸
자신의 이야기이자 가해자인 일본군을 표현한 첫 그림
이었다. 또 그때의 악몽이 평생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준 그림이기도 했다. 그것은 평소 선한 얼굴에
그늘 없이 밝은 김 할머니에게도 예외 없이 고통이라는
사실을 그림으로 영원히 기록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그림을 기점으로김 할머니도 기억의 퍼즐을 맞추듯
과거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때 그곳에서>(160, 166~167쪽) 중에서
 

미술 수업을 시작하려는데, 김 할머니가 수업 준비는 안 하고 장롱을 뒤적거리더니 곱게 꽃을 수놓은 천 여러 장을 꺼내놓았다.
“미술 선생, 이것 좀 봐.”
(중략)
“이 꽃들 고운 것 좀 봐! 이것으로 뭘 할 수 있을까?”
한동안 자수를 뒤적이며 아까워하는 할머니를 보다가,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할머니, 이 자수를 이용해서 그림을 그려볼까요?”
“수에다 그림을?”
“어떤 자수가 제일 마음에 드세요?”
김 할머니는 한참을 뒤적이더니, 탐스러운 목련꽃 자수를 집어들었다.
“여기 봉오리를 터뜨리기 전 목련꽃이 꼭 내 신세 같네. 제일 이쁠 적에 제대로 한번 피어보지도 못한 것이 나랑 닮았어.”
―<잡동사니>(195~197쪽) 중에서
 
 
할머니들이 자신들의 고통과 슬픔을 그림으로 하나하나 완성할 때마다 자신감과 성취감도 그만큼 쌓여갔다. 자연스레 그림은 할머니들에게 삶의 목적이자 살아가는 한 방편이 되었다. 할머니들에게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라는 역할 외에 자신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승화시키는 화가라는 새로운 역할이 생긴 것이다. 또한 할머니들은 그림 전시를 통해 변하고 있었다. 그림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과 애정이 할머니들을 조금씩 바꿔놓았다. 할머니들이 과거의 상처를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증언할 때와 그림으로 보여줄 때의 모습이 사뭇 달랐다. 그림에 대한 질문에 간간이 미소 지으며 자신 있게 답하는 모습에서 증언에서는 볼 수 없던 자존감이 엿보였다. 할머니들도 다른 사람에게 자랑하고 싶은 일이 생긴 것이다. 특히 일본에서 열린 전시회는 요즘 할머니들이 그 누구보다 멋진 삶을 살고 있음을 관객들에게 증명하는 장이 되었다.
―<전시회>(266쪽) 중에서
 

저자소개

이경신 (저자)
홍익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하고 1993년부터 5년 동안 나눔의 집에 거주하는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 할머니들과 미술 수업을 진행하며, 세대를 뛰어넘는 따뜻한 우정을 쌓았다. 국내외에서 할머니들의 그림 전시회를 열어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를 알리는 데 일조했다. 할머니들과의 미술 수업을 계기로 인하대학교 미술교육대학원에서 정신질환 환자의 미술 치료 가능성에 대해 공부했고, 이러한 경험은 자연스레 미술의 공공적·사회적 순기능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져 이후 국내 이주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미술 치료 수업을 진행해왔다.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를 주제로 한 그림을 그렸으며, 현재도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며 한국·일본·독일 등지에서 전시회를 열고 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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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펴내며

우연
눈빛
떨리는 손
시험관계
할머니 미술반
고독한 열정
감춰진 상처
멈추지 않는 고통
새로운 시도
붉은 입술
일편단심
낯섦
변화
고향
나쁜 손
뒷모습

그림 사과 사건
빤스 하나 입히라
그때 그곳에서
호기심
공출된 어린 시절
악몽
잡동사니
박옥련 행님
만남
목욕하는 처녀들
끌려감
책임자를 처벌하라
그림이 된 고통들
마지막 수업
새가 된 강덕경 할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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