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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사강목의 탄생

박종기(저자) | 휴먼역사 | 18,000원 | 2017.06.26 | 364p | ISBN : 9791160800456 | 93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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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사강목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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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에서 고려왕조까지의 역사를 다룬 최초의 민족주의 역사서이자 통사인 순암 안정복의 《동사강목》. 조선 최고의 역사책이라 불릴 만한 이 책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고려사를 연구해온 박종기 교수는 1754년부터 1760년까지 6년 간 순암 안정복과 스승 성호 이익이 주고받은 편지에 주목하여 《동사강목》의 탄생 배경과 편찬 과정, 서술의 특징을 정리·분석했다.
이 책은 최초로 《순암집》과 《성호전집》에 따로 실려 있는 순암과 성호가 주고받은 편지를 시기별로 정리하고 내용에 따라 문답형식으로 재구성하여 《동사강목》의 탄생 과정을 복원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이러한 접근 방법은 기존의 《동사강목》 연구가 단순히 《동사강목》의 내용 자체 분석에 치중했던 것과는 매우 다르다. 또한 《동사강목》이 순암의 저서이지만, 편지를 통한 스승 성호의 가르침과 두 사람의 역사대화를 배제하고는 《동사강목》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할 수 없다는 것이 저자의 새로운 주장이다. 두 사람이 주고받은 편지에는 《동사강목》의 편찬 과정뿐 아니라, 역사서술과 인식의 중심문제 등이 고스란히 담겨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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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1. 조선 최고의 역사책 《동사강목》, 그 탄생 과정을 복원하다!
 
이 책의 1~4부에서는 《동사강목》의 편찬 과정과 함께 편지에 드러나는 고조선부터 고려시대까지 영토, 사건, 인물에 대한 두 역사가의 역사인식을 분석하고, 그것이 《동사강목》 서술에 어떻게 반영되었는지를 소개한다. 역대 왕조의 기원과 영토?강역 같은 문제 외에도 단군의 수명(壽命), 신화 속 진실, ‘조선’ 명칭의 유래 등 다양한 역사 쟁점을 살필 수 있는데, 특히 당대 가장 현대사였던 고려 말 우왕과 창왕에 대한 재해석과 고려 인물들에 대한 재평가가 흥미롭다.
5부에서는 조선시대부터 구한말까지 《동사강목》의 유통과정을 통해 《동사강목》이 근대 역사교육과 역사교과서 편찬에 미친 영향을 살피고, 현재 남아있는 다양한 종류의 《동사강목》 판본을 비교분석하여 그것이 가지는 역사적 가치를 밝혀낸다. 부록에서는 순암과 성호가 주고받은 편지 가운데 역사에 관한 문답 내용과 《동사강목》 초고본에서 순암이 수정한 목록 등의 자료를 제시하여 《동사강목》의 완성 과정을 더욱 상세히 살펴볼 수 있게 했다.
한 권의 역사서를 편찬하는 과정이 고스란히 담긴 18세기 두 조선 역사가의 편지를 통해 《동사강목》의 역사적 가치는 물론이고, 18세기 중반 역사가들의 역사인식과 당대의 주요 역사 쟁점이 무엇이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조선 후기 두 역사가가 남긴 편지 속 역사대화를 통해 새로운 한반도의 역사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동사강목》은 두 사람의 공동 작업으로 완성된 역사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이러한 얘기가 《동사강목》 편찬에서 순암의 노력과 역할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역사연구는 자료와 기억의 거대한 창고에서 그것들을 끄집어내 새롭게 다듬는 작업이다. 결코 혼자서 이루어낼 수 없는, 인식과 경험의 공유가 필요하다. 앞선 세대의 인식과 경험을 공유하는 일이야말로 창조적 역사연구의 첫걸음이다. 순암은 스승 성호의 경험과 인식을 온전히 받아들여 이를 자신의 역사서술과 편찬에 내면화했다. 한 권의 역사서를 편찬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두 사람의 편지 속에 고스란히 담긴 경우는 《동사강목》이 유일하다. 편지 속에는 《동사강목》의 편찬 과정, 역사서술과 인식의 중심문제 등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책을 펴내며〉(7쪽) 중에서
 
2. 스승과 제자의 역사 편지로 엮어낸 《동사강목》
 
순암과 성호의 편지 가운데 역사에 관해 논한 것 대부분이 역사서술과 해석에 있어 논란이 되는 주제를 다룬 것이다. 따라서 편지를 분석하는 것만으로도 《동사강목》의 주요 내용과 논점을 대부분 파악할 수 있다고 박종기 교수는 말한다.
순암과 성호가 집중적으로 편지를 주고받은 때는 1754년부터 1760년까지 순암이 《동사강목》을 집필하던 시기다. 순암은 편지로 스승에게 영토와 강역, 지리 고증, 사료 해석에 관해 많은 질문을 던지며 의견을 구했고, 성호는 이에 일일이 답하며 제자의 역사책 편찬 작업을 격려했다. 실제로 《동사강목》에는 성호의 조언과 답변에 따라 서술의 방향과 내용이 확정된 부분이 적지 않아서 스승의 편지가 《동사강목》 편찬 과정에 큰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박종기 교수는 《동사강목》에 담긴 순암의 독창적 역사인식에도 주목했다. 1760년 일차적으로 《동사강목》을 완성하지만, 성호 사후(死後) 30년간 계속된 수정과 보완 작업을 통해 순암 특유의 역사인식이 《동사강목》에 반영되었다. 특히 조선시대 금기시되어온 고려 말 우왕과 창왕의 정통성 문제와 관련해 ‘폐가입진’을 부정한 서술은 성호와 주고받은 편지 내용과 달라 수정 과정에서 역사인식이 크게 변화했음을 알 수 있다(235쪽 참조).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암이 편찬 과정에서 부딪혔던 여러 문제에 대해 스승과 편지로 묻고 답하는 과정은 《동사강목》 편찬의 주요한 과정이었다. 두 사람의 편지를 문답 형식으로 재정리하여 《동사강목》의 편찬 과정을 재구성하고, 《동사강목》의 서술 분석을 통해 당대 역사학의 주요 쟁점과 역사인식을 새롭게 정리한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순암의 《동사강목》 저술 방식은 기존 역사서와 여러 학인들의 사론을 빠짐없이 섭렵해 활용하면서 실증의 차원에서 역사 연구의 수준을 한 단계 높였다. 그러나 《동사강목》 저술에서 가장 돋보이면서 독창적인 모습은 편지를 활용해 사실을 보완?수정한 독특한 저술 방식이다. 《동사강목》을 저술하는 과정에서 강역과 지리 고증, 인물평가 및 개별사실의 고증은 순암의 가장 큰 관심거리였다. 순암이 볼 때 이러한 문제는 충분하게 해명되지 않았다고 생각하거나 과거 역사가들의 해석에 만족하지 않은 것들이다. 순암은 여러 자료를 참고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기도 하지만, 주로 스승인 성호와 주변 선배, 동료 학자 들에게 편지를 보내 의견을 교환해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두 사람의 학연을 이어준 편지〉(40쪽) 중에서
 
순암은 35세 때인 1746년(영조22) 10월 처음 성호 선생을 뵙고, 평생 스승으로 모시게 된다. 이듬해 9월에 다시 성호 선생을 만나고, 이후 1748년(영조24) 12월, 1751년(영조27) 7월 모두 네 차례 선생을 직접 만난다. 5년간 순암이 성호와 직접 대면한 것은 네 번에 불과하다. 비록 직접 대면한 기회는 많지 않았지만 순암은 스승에게 수많은 편지를 올려 역사는 물론 각종 의례와 경전에 대한 여러 의문점을 묻는다. 앞에서 소개한 스승과 제자 사이에 오간 수많은 역사 편지는 네 차례 만남으로 맺어진 인연에서 비롯된 것이다. 직접 대면은 물론 편지를 통한 스승 성호의 조언과 격려는 단순히 저술을 권유하는 차원에서 그치지 않고 이 저술의 완성에도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이 저술은 두 사람의 공동 저술이라 해도 크게 이의를 달 수 없을 것이다. ―〈스승 성호, 역사서 편찬을 권유하다〉(47~48쪽) 중에서

3. 최초의 역사교과서에 기초가 된 《동사강목》
 
18세기에 편찬된 《동사강목》이 구한말 필사본의 형태로 널리 유통되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개항 이후 ‘서세동점’이라는 위기의식과 ‘문명개화’라는 시대의 과제 앞에서 새로운 가치관 확립을 위해 우리 역사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100여 년 전에 편찬된 역사서이지만, 고조선부터 고려까지 역사를 담은 《동사강목》이 주목을 받게 된 것이다. 많은 조선의 지식인들이 《동사강목》을 필사해 보급했고, 1915년 조선고서간행회가 조선왕실에 보관되어 있던 것을 활자로 간행하면서 《동사강목》이 일반에 널리 보급되었다. 또 갑오개혁 이후 근대교육이 제도화되면서 학교 교육에서의 역사교육이 강조되어, 역사교과서 편찬에도 《동사강목》의 서술과 역사인식이 반영되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신채호와 정인보 등 민족주의 역사가들이 《동사강목》에서 고증한 지명과 역사사실을 활용하기도 했다.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에 우리 역사의 기초가 되는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던 《동사강목》이 해방 이후부터는 역사자료로서의 지위를 잃었다. 《삼국사기》나 《고려사》에 비해 늦게 편찬된 사료라는 이유에서 외면 받아온 것이다. 하지만 순암의 철저한 고증 정신을 기반으로 한 역사 서술에 대한 재해석과 재평가는 오늘날 역사연구에서도 충분히 주목받을 만하며, 《동사강목》의 편찬과 완성 과정을 보여주는 성호와 순암의 편지 역시 18세기 역사학의 수준과 문제의식을 엿볼 수 있는 매우 가치 있는 사료다.

 
순암 안정복의 《동사강목》은 고조선부터 고려 말까지 역사를 서술한 통사로서, 전근대에 편찬된 우리나라 역사서 가운데 가장 긴 시간의 역사를 다룬다. 또한 기존 역사서에 없는 새로운 사실들을 발굴해 기록하는 등 내용 면에서도 어느 역사서보다 알차고 풍부하다. 유교와 유교 역사학에 대해 가장 비판적이며 인색한 평가를 내린 민족주의 역사가 신채호(1880~1936)조차 유교 역사가인 순암을 높이 평가했다. “안정복은 평생을 오직 역사학 연구에 전념한, 500년 이래 유일한 사학 전문가라 할 수 있다. …… 연구의 정밀함은 선생을 뛰어넘을 사람이 없다. 지리의 잘못을 교정하고 사실의 모순을 바로잡는 데 가장 공이 많았다고 할 수 있다.”(신채호, 《조선상고사》, 총론) ―〈들어가며: 동사강목은 어떻게 완성되었나〉(17쪽) 중에서
 
1899년 현채(玄采)가 편찬한 《보통교과동국역사》는 김택영(金澤榮)의 《동국역대사략》을 소학교용의 보통교과로 보완, 재정리한 교과서다. 이 책의 첫머리에 ‘역대일람’과 ‘역대왕도표(歷代王都表)’가 구한말 국사교과서에 처음 등장하는데, 《동사강목》의 편찬 체제를 계승한 것이다. 신라의 세 여왕을 모두 여주(女主)로 표기한 것 또한 《동사강목》의 범례와 서술을 따른 것이다. 또 단군에 관한 서술은 《동사강목》의 기록을 그대로 옮겨 적는 등 대체로 1895년부터 1910년까지 대부분의 교과서는 《동국통감》, 《동사강목》 등 기존 통사류를 요약하거나, 《동사강목》과 같이 마한 정통론에 의거해 단군조선-기자조선-마한-(삼국무통)-통일신라-통일고려로 이어지는 통사 체계로 목차를 구성하고 있다.
―〈구한말 동사강목의 유통과 역사교과서〉(288쪽) 중에서

저자소개

박종기 (저자)
30년간 고려사 연구라는 한길을 걸으며 ‘역사’를 주제로 대중과 함께 호흡하길 원하는 역사학자. 전통과 현대의 접목, 역사와 현실의 일체화를 통한 새로운 역사상을 수립하는 데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고려사 연구를 해왔다. 현재 ‘고려 다원사회론’을 통해 잊혔던 고려왕조의 개방적이고 역동적인 역사를 되살리는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인간이 주체가 되는 역사를 쓰는 것이 꿈이라는 그가 이번에는 《고려 열전》으로 천 년 전 고려시대를 살았던 인간의 삶에 숨을 불어넣는다. 건국 영웅과 명장 들의 이야기는 물론 귀화인과 하층민, 여성 들의 이야기까지……. 거대한 제도와 구조에 파묻힌 인간의 역사를 발굴해 상상력을 자극하는 고려사를 들려줄 것이다.
서울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에서 고려시대 부곡인과 부곡 집단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민대학교 교수, 한국역사연구회 및 한국중세사학회 회장을 지냈으며, 현재 역사 대중서 집필에 전념하는 역사 저술가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고려사의 재발견》(2015), 《고려의 부곡인, 〈경계인〉으로 살다》(2012), 《새로 쓴 5백년 고려사》(2008), 《안정복, 고려사를 공부하다》(2006), 《지배와 자율의 공간, 고려의 지방사회》(2002), 《고려시대 부곡제 연구》(1990), 《왕은 어떻게 나라를 다스렸는가》(공저, 2011)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고려사 지리지 역주》(2016)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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