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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의 착각 - 당신이 진보라 부르는 것들에 관한 오해와 논쟁의 역사

크리스토퍼 래시(Christopher La(저자) 이희재(역자) | 휴먼인문 | 35,000원 | 2014.04.07 | 768p | ISBN : 978-89-5862-7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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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의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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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는 과연 우리를 장밋빛 미래로 데려가는가?"

‘한계’를 사유하는 미국의 사회비평가 크리스토퍼 래시,
길을 잃은 이 시대의 ‘진보’에 일침을 놓다!

지금 좌파는 길을 잃었다. 우파의 재부상 속에 역사는 늘 더 나은 방향으로 진보할 것이며 복지국가가 자유 시장 자본주의를 대체하리라던 좌파의 믿음은 무너지고 있다. 미국의 저명한 역사가이자 사회비평가인 크리스토퍼 래시는 미래를 위협하는 것은 좌우의 이념 공방이 아니라 사회 내부의 심리적·문화적·정신적 기초의 와해이며, 지금 진보에 필요한 것은 극단적으로 냉소하거나 낙관하는 대신 한계를 명확하게 직시하는 ‘서민의 철학’이라고 주장한다. 인간의 무한한 욕망을 모두 만족시키는 천국은 없으며, 삶의 고통과 한계에 승복하고 끊임없이 성찰하는 서민적 영웅들이야말로 미래를 만들어나갈 주역이라는 것이다. 이 책은 진보에 관한 논쟁을 이끌어온 주요 비평가들과 그 사상적 배경을 체계적으로 정리함으로써 이 시대의 진보가 나아가야 할 근본적인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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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1. 진보에 관한 오해와 논쟁의 역사를 다시 읽는다
-길을 잃은 이 시대의 진보를 향한 일침

 
진보(progress)는 과연 우리를 장밋빛 미래로 데려갈 것인가? 우파의 재부상 속에서 좌파가 품어온 오랜 전제들은 무너지고 있다. 역사는 더 나은 방향으로 진보하며, 좀 더 나은 형태의 복지국가가 자유 시장 자본주의를 대체하리라는 전제 말이다. 미국의 역사학자이자 사회비평가인 크리스토퍼 래시는 《진보의 착각》을 통해 이 시대 지식인들이 길 잃은 ‘진보’를 향한 맹목적인 낙관주의와 오해에서 깨어나야 할 때라고 주장한다.
20세기 이후 좌파와 우파는 생산물의 분배를 두고 극심한 이념적 갈등을 낳았지만, 양자 모두 인간의 무한한 욕망을 긍정했고 대량생산을 통한 생활수준의 향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믿어왔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방종한 생활수준을 그대로 유지하고자 했던 우파와 마찬가지로 서구 수준의 생활을 전 세계적으로 확대하려고 했던 좌파의 기획 역시 결과적으로 환경재앙과 빈부격차의 심화, 전 세계적 폭동과 테러, 기후변화를 불러오고 말았다.
《진보의 착각》은 인간의 무한한 욕망을 만족시키는 천국은 없음을 인정하고 무너진 사회적·문화적 질서를 다시 세우는 일에 주목한다. 다시 말해 지금 진보 진영에 필요한 것은 이념적 순결성, 극단적인 냉소주의이나 낙관주의가 아니라 노동의 즐거움, 안정된 관계, 가정생활, 향토애, 역사적 귀속감 등 무너진 정신적 가치를 재건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이 책은 지금까지 역사학·정치학·사회학에서 다뤄온 진보 개념을 점검하고, 좌파라는 이념적 경계 너머에 우리가 간과하고 오독하고 있는 공화주의와 기독교 전통 등, 다양한 이론과 가치관을 재조명하고 있다. 19세기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진보에 관한 논쟁을 이끌어온 주요 비평가들과 그 사상적 배경을 다양한 시각에서 체계적으로 정리한 이 책은 이 시대의 진보가 나아가야 할 근본적인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이제는 파시즘도 사회주의도 미래의 물결을 나타내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고르바초프가 중대한 개혁을 단행하고 나서 동유럽에서 소련 제국이 무너진 것은 사회주의의 시대도 이제는 저물었음을 암시한다. 파시즘은 어디에나 갖다 붙일 수 있는 호칭과는 거리가 멀고 자본주의 몰락의 최종 단계를 나타내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전체주의라는 더 느슨한 개념을 대체어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20세기의 역사는 전체주의 체제가 굉장히 불안정하며 고전적 파시즘 모델이나 사회주의 모델과도 들어맞지 않는 관료주의 형태로 나아감을 보여준다. 그렇다고 해서 민주주의의 앞날이 안전하다는 소리가 아니다. 다만 민주주의를 위험에 빠뜨리는 요인은 외부에서 일어나는 전체주의 운동이나 집단주의 운동이 아니라 내부에서 일어나는 심리적·문화적·정신적 기초의 와해라는 사실을 말하고 싶다.
-<서문> 중에서(19쪽)

 
우리는 근대 과학과 근대 생산이 낳은 무한한 가능성이라는 전제를 의심스럽게 만드는 증거가 차츰 쌓이는 현실을 외면할 수는 없다. 보편적 풍요의 약속에는 언제나 평등성을 중시하는 듯이 담겨 있었고 그런 함의가 없다면 도덕적 명분을 지니기 어려웠다. 그런 함의는 해석하기 나름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물자와 서비스의 총량을 키우기만 하면 모든 사람의 생활수준이 덩달아 올라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어떤 사람들은 부의 총량을 늘리는 데에 그칠 것이 아니라 그것을 좀 더 균등하게 배분하려는 시책을 좀 더 과감하게 밀어붙이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진보를 믿는 사람치고 전체 생산력에 제한을 두어야 한다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좀 더 검소한 생활로 돌아가고자 한 사람도 없었다. 그런 생각은 진보의 합의에서 벗어난 생각이었다.
-<우파 서민주의와 자유주의> 중에서(619쪽)

 
2. 엘리트주의적 이념 논쟁을 넘어 ‘서민주의’ 철학으로
정신적인 것의 귀환, 한계에 승복하는 삶을 추구하다

 
《진보의 착각》은 미래를 위협하는 것은 전체주의나 집단주의 등의 이념 논쟁이 아니라 사회 내부의 심리적·문화적·정신적 기초의 와해이며,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정신적인 것의 귀환이라고 말한다. 1970년대까지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던 저자는 미국 사회가 정당한 권위의 붕괴로 인해 고통을 겪으며 제도권은 신뢰를 잃고 노동은 가치를 잃으며 투표는 행사치레가 되고 병역은 피해야 할 것으로 전락하고 있음을 우려했다. 그리고 이처럼 사회적으로 팽배한 냉소주의에 맞서기 위해서는 이념적 무장이 아니라 욕망의 절제와 한계의 수용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이러한 관점에서 저자는 인생의 어둠과 비참함을 알면서도 자립과 책임, 검약과 절제를 중시하는 미국 중하류층의 특성을 일컫는 서민주의(populism)를 주창한다. 서민주의는 한 뼘의 땅, 작은 가게, 쓸모 있는 천직 등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는 데 필요한 기술, 즉 보편적 가산 소유를 중시하며 한계로 점철된 인생을 긍정하며 살아가는 작은 영웅들의 삶을 말한다. 이 개념은 19세기의 노동운동에서 착안한 것으로, 저자는 당시 “생산하는 계급들”의 단결을 염두에 두고 협동조합을 통해 노동자가 생산을 다시 장악하려 했던 서민당, 즉 생산자주의의 다양한 시도들에서 희망을 찾고자 한다. 가산 소유와 개인적 독립성에서 창출된 당대의 시민 의식은 역사상 유래 없는 성과로서, 자유와 노동이 병존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유의 바탕에는 기독교적 금욕주의라는 저자의 종교관이 깔려 있다. 저자는 주류 진보에게 파묻혔던 공화주의자와 마찬가지로 주류 기독교로부터 밀려났던 ‘한계의 사유자’들을 기독교의 전통에서 새롭게 발굴해낸다. 칼뱅, 칼라일, 조너선 에드워즈, 랠프 월도 에머슨, 윌리엄 제임스까지 삶의 고통과 유한성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한계에 승복할 줄 아는 삶을 추구한 사람들이었다. 진보가 추구하는 역사 관념이 가장 수준 높은 소비자들로 이루어진 사회를 전제로 하는 반면, 이들의 철학은 자신의 천직에 대한 책임감과 만족감을 추구하고, 현재의 편익보다는 더 큰 이상을 좇으며, 인간의 숙명과 한계를 인정하는 숭고한 정신성으로 정의할 수 있다.
 
나는 진보 이념에 맞서는 일종의 반대 입장들을 되살리고 그것들을 “공동체”의 쇠퇴에 대한 좀 더 낯익은 탄식과 구별하려고 했는데 여기에는 되풀이되는 주제들이 있다. 그것은 재산 소유와 관련된 책임감, 어떤 일에 푹 빠질 때 생기는 자기 망각, 물질적 편익이 선한 삶에 대한 좀 더 고단한 이상을 절멸시킬 위험성, 인간이 행복을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음을 깨닫는 것이야말로 행복의 전제 조건이라는 인식을 말한다. 이런 고정관념들은 따로따로 또는 이리저리 짝을 이루어 혹은 소렐이 주창한 생디칼리슴에서, 혹은 조지 D. H. 콜 같은 사람이 내세운 길드 사회주의에서, 혹은 조사이어 로이스의 “충성의 철학”에서, 혹은 라인홀드 니부어가 말하는 “원한에 맞서는 영혼의 원리”에서, 혹은 마틴 루터 킹의 비폭력 저항 실천에서 다시 나타났다. 이 사상가들이 서로 공유하고 선배 사상가와도 공유한 것은 한계 의식이었으며, 이 한계 의식은 다음에 이어지는 내용을 통합하는 물줄기다.
-<머리말> 중에서(8쪽)
 

진보주의의 기준으로 보자면 소생산자들로 이루어진 사회라는 이상은 협소하고 옹색하고 반동적이었다. 그것은 미래를 응시하기를 거부하는 소시민적 기원의 오점을 간직하고 있었다. 소시민적 낙후성, 존경심, 종교성에 대한 경멸은 진보 의식의 징표가 되었다. 계몽주의 진영이 꼬집는 중하류층 문화의 풍자화에는 부인 못할 진실의 요소가 담겨 있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을 풍자로 알아보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세월이 흐르고 대형 사업체들이 소생산자를 자꾸 몰아내면서 소시민 운동은 점점 방어적으로 흘렀고 반지성주의, 외국인 혐오주의, 인종주의처럼 현대사회에서 볼 수 있는 최악의 충동들과 손을 잡기도 했다. 그러나 평민 급진주의라는 똑같은 전통은 현대 정치가 당면한 가장 큰 문제, 곧 시민 의식의 물질적 토대인 가산 소유를 무엇으로 대체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진지하게 제기한 유일한 세력이었다.
-<10 우파 서민주의와 반자유주의> 중에서(621쪽)

 
3. 가족과 공동체에서 시작하는 풀뿌리 연대
-충성과 용서의 미덕을 통해 진정한 진보 정치를 꿈꾸다

 
《진보의 착각》은 미래가 아니라 대중의 무지몽매함과 싸워온 미국 좌파의 엘리트주의를 비판하며, 노동당과 사회주의 전통이 없는 후진적인 정치 문화 속에서 연대를 만들기 위해서는 모호한 인도주의가 아니라 향토애에 기반을 둔 공동체 의식을 추구해야 한다고 보았다. 예를 들어 미국의 흑백 차별 철폐 운동이 성과를 얻은 것은 남부의 흑인들이 교회를 중심으로 지역사회에 오랫동안 뿌리를 내리고 탄탄한 경제력을 구축하고 있었던 덕분이었으나, 북부의 일부 흑인들이 원한에 사무쳐서 과격한 구호를 외치는 순간 이 민권 운동에 공감했던 백인들은 등을 돌리고 말았다. 이에 저자는 철학자 조사이어 로이스의 ‘충성의 철학’과 신학자 라인홀드 니부어의 ‘원한에 맞서는 영혼의 원리’를 소개하며 연대의 범위를 지나친 보편주의로 몰고 간다면 이는 곧 대중의 반발로 이어질 것임을 경고한다. 이해타산을 따지지 않고 개인을 보듬어주는 가정의 정에서부터 크게는 자신이 몸담은 향토적 공동체나 집단에 대한 충성에 이르기까지, 비록 진영은 다르더라도 상대에게 그러한 충성심이 있음을 인정하고 존중할 때 진정한 연대가 탄생한다는 것이다. 더불어 저자는 집단적 이기주의와 독선으로 인해 벌어지는 갈등 역시 ‘관용’이라는 보편주의적 처방이 아니라 용서라는 종교적 이상을 추구해야 한다고 보았다. 용서야말로 경쟁하는 집단들이 서로의 인간성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당당하게 맞서는 힘이라는 것이다. 적 안에 있는 악은 내 안에 있는 악이기도 하나 구현할 기회가 없었을 뿐임을 인정하면서 도덕적 우월성을 버리고 원한의 순환 고리를 끊어낼 때, 집단 간의 갈등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다.
 
동정과 공포의 정치는 “각성된 소수”와 이제 진보주의자들에게 인종주의자로 찍힌 다수의 균열을 심화시켰다. 독선과 원한에 강력히 도전하면서 시작된 민권운동은 계몽되지 않은 대중에게 느끼는 우월감, 적에게도 고결한 의도가 있음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 여론의 호응 여부에 아랑곳하지 않고 점점 정책을 밀어붙이는 자세 등 미국 자유주의에서 제일 안 좋은 면들을 키워주는 것으로 끝났다. 하지만 앞에서 살펴본 대로 자유주의자들은 이미 1920년대에 여론에 대한 믿음을 잃기 시작했다. 훗날 자유주의가 잘나갈 때에도 이런 의혹은 완전히 가시지 않았다. 자유주의가 미국 사회에서 느끼는 단절감은 오히려 계속 커졌다.
-<8 원한에 맞서는 영혼의 원리> 중에서(479~480쪽)

 
1994년에 출간된 이 책은 이념적 순결성과 엘리트주의에 매몰된 미국의 진보 진영에 큰 충격을 던져주었다. 계몽에 집착하는 미국의 좌파로부터는 파시스트라는 비난을 받기도 하고 욕망에 집착하는 미국의 우파로부터는 반기업주의자라는 비난을 듣기도 했지만, 숭고한 도덕 기준과 가치관을 막연한 타인에게 요구하면서 자신의 삶은 예외로 두는 여느 지식인과 달리 크리스토퍼 래시의 철학은 역사 속에서 오랫동안 인류가 지켜왔던 가족과 공동체, 종교의 가치를 재조명함으로써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긍정해왔다. 미국의 황금기를 지나온 역사가가 자신의 시대에 대한 반성적 세계관을 담은《진보의 착각》은 보다 인간중심적이고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함으로써 평범한 소시민적 삶과 유리된 이념 논쟁과 권력 투쟁만을 반복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낡은 정치 풍토에 새로운 논점을 시사하고 있다.
 

저자소개

크리스토퍼 래시(Christopher Lasch) (저자)
미국의 역사가이자 사회비평가. 1932년 미국 네브래스카 주에서 태어나 하버드대학교를 졸업했고, 콜롬비아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로체스터대학교에서 사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1994년 암으로 사망했다. 1979년 출간된 《나르시시즘의 문화》는 미국의 사회적·문화적 현상과 개인의 삶이 바깥 세계와 완전히 차단되어 오로지 자기애의 욕구에 천착해 있음을 지적하며 미국 사회에 중요한 화두를 던졌다. 지은 책으로 《엘리트의 반란과 민주주의의 배반》가 있다.
본래 사회주의자였던 그는 말년에는 가정과 종교의 가치를 역설했고 온당하고 건전한 사회적 권위와 가치관을 되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진보의 착각》은 이념적 순결성에 집착하는 세태를 비판하고 공동체와 노동, 가족과 종교가 지닌 가치를 재조명했던 래시의 사상을 집대성한 책이다. 궁핍한 현실속에서도 인간이 인간다움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길을 고민한 그는 세상의 모든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여기고 치열하게 사유한 이 시대의 인간주의자다.
이희재 (역자)
서울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성균관대학교 독문학과 대학원을 수료했다. 20여 년 넘게 전문 번역가로 활동했으며, 영국 런던대학교 SOAS(아시아아프리카대학)에서 번역과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번역의 탄생》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反자본 발전사전》, 《소유의 종말》, 《마음의 진보》, 《몰입의 즐거움》, 《산티아고 가는 길》, 《예고된 붕괴》,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세계사》, 《왜 어떤 정치인은 다른 정치인보다 해로운가》, 《인간다움의 조건》, 《지적 사기》 등이 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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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서문─좌와 우의 무용성
돌아가는 분위기 | 말할 수 없는 주제들 | 새로운 좌파에 쌓이는 불만 |
가족을 거부하는 사회 | 그들은 미래가 아닌 대중과 싸운다 | 새로운 우파의 약속된 땅

1 진보를 다시 읽는다
진보는 세속 종교인가? | 진보를 믿기 위해 절망에 맞선다 | 세속화 명제에 대한 비판 |
진보의 진정한 의미 | 섭리와 운수, 은총과 덕성 | 애덤 스미스와 욕망의 재활 |
안전과 행복의 전면화에 대한 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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