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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케우치 요시미 선집 1 - 고뇌하는 일본

다케우치 요시미(竹內好) (저자) 마루카와 데쓰시(丸川哲史) (역자) | 휴먼인문 | 25,000원 | 2011.11.07 | 476p | ISBN : 978-89-5862-424-0 | 9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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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케우치 요시미 선집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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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케우치 요시미 선집(전2권)》은 17권에 이르는 다케우치 요시미(竹內好 1910~1977) 의 전집에서 주요 논문을 추려 엮은 책이다. 1권은 ‘일본에서 발하는 시선(일본으로 향하는 시선), 2권은 ‘아시아에서 발하는 시선(아시아로 향하는 시선)이라는 주제로 편집되었다. 다케우치 요시미의 주된 관심사인 ‘일본 근대와 근대의 초극’, ‘아시아와 아시아주의’, ‘문학과 정치의 관계’에 대한 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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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1. 동아시아에서 생각하다, 동아시아를 생각하다
― 동아시아 사상가를 만나다:마루아먀 마사오, 다케우치 요시미, 그리고 쑨거
 
(주)휴머니스트에서는 ‘동아시아에서 생각하다, 동아시아를 생각하다’라는 기획으로 2011년 2월 마루야마 마사오의 《전중과 전후 사이 1936~1957》를 낸 데 이어, 2011년 11월 신간 《다케우치 요시미 선집(전2권)》을 발간한다. 이 기획은 2012년 중국 사회과학원 연구원인 쑨거(孫歌)의 《쑨거 선집》으로 마무리된다.
《전중과 전후 사이 1936~1957》은 전후 일본 사상계를 대표하는 지성인 마루야마 마사오(丸山眞男 1914~1996년)의 작품이다. 이 책은 그가 젊은 시절에 쓴 글을 모은 문집으로 전쟁 기간에 집필한 25편과 전후에 집필한 36편, 총 61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본을 대표하는 정치학자의 탄생을 예고하는 학생 논문에서부터 서평, 대화체 글, 신문 기고문, 강연 내용 등 다양한 주제와 다채로운 글이 실려 있어 마루야마가젊은 시절 어떤 글을 썼으며,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았는지 말해준다.
이번에 발간된 신간 《다케우치 요시미 선집(전2권)》은 17권에 이르는 다케우치 요시미(竹內好 1910~1977) 의 전집에서 주요 논문을 추려 엮은 책이다. 1권은 ‘일본에서 발하는 시선(일본으로 향하는 시선), 2권은 ‘아시아에서 발하는 시선(아시아로 향하는 시선)이라는 주제로 편집되었다. 다케우치 요시미의 주된 관심사인 ‘일본 근대와 근대의 초극’, ‘아시아와 아시아주의’, ‘문학과 정치의 관계’에 대한 글들이다.
다케우치 요시미(竹內好 1910~1977)는 늘 마루야먀 마사오와 함께 거론된다. 두 지식인은 일본의 전후 사상계에서 활동했는데, 이들의 존재로 말미암아 전후 일본 사상계가 구성될 수 있었다. 그들은 일본의 정신―근대성, 내셔널리즘, 파시즘―을 비판적으로 해부하였고 이를 통해 다시 만들고자 했다. 둘 사이의 명암은 있었다. 마루야마 마사오가 정치사상에 정통해 ‘비판적 지성’의 중심에 올랐던 것과는 달리 다케우치 요시미는 ‘중국근대문학’ 전공자로서 문학을 통해 정치를 고민하는 일종의 학문적 이방인이 되었다.
다케우치 요시미의 사상적 원점은 루쉰이었다. 루쉰으로 인해 다케우치 요시미는 일본의 기존 지식인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일본의 근대를 파고들 수 있었다. 그가 사상계에서 부활한 결정적 계기는 제자인 쑨거가 《다케우치 요시미라는 물음》을 출판한 일이었다.
중국 사회과학원 문학연구소 연구원인 쑨거는 마루야마 마사오와 다케우치 요시미를 공부한 중국의 지식인다. 그녀는 중국현대문학, 일본근대사상사, 비교문화를 전공했으며, 미조구치 유조(溝口雄三)와 함께 중일 지식공동체 회의를 이끌고, 중국 지식인으로는 드물게 동아시아를 지적 화두로 삼고 있다. 앞서 말한 대로 그의 선집 역시 2012년 휴머니스트에서 발행될 예정이다.
 
 
2. 루쉰의 벗, 다케우치 요시미
 
다케우치 요시미는 일본 사상계에서 아직 ‘전통’으로 자리 잡지 못한 특이한 사상가이다. 그를 자리매김하는 것, 계승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의미다. 그는 학술적인 방식으로 글을 쓰지 않았기에 엄밀한 의미에서 ‘학자’가 아니었다. 평론가였고, 늘 문학을 자신의 영혼이 돌아갈 거처로 삼았다. 그럼에도 일본근대사상사의 중요한 모든 과제에 관심을 기울였고, 역사에 그 흔적을 남겼다. 하지만 다케우치 요시미는 일본이 아닌 중국에서 사상의 동반자인 루쉰(魯迅 1881~1936년)을 만났고, 그의 사후에도 쑨거(孫歌)라는 이방의 계승자를 얻는다.
그의 사유가 계속 관심을 끄는 이유는 탈근대적인 요소를 품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편집자의 생각이다.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에게 관심을 갖고 접근하려는 국내 연구자들은 상당하다. 다만 아직 그의 저작이 부분적으로만 번역 출간되어서 본격적인 연구와 관심, 그리고 접근이 힘들었다. 이번 《다케우치 요시미 선집(전2권)》 출간을 기회로 다케우치 요시미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길 기대한다.
 
 
 
3. 《다케우치 요시미 선집 1-고뇌하는 일본》의 개요
 
다케우치 요시미는 전후 중국문학의 향방을 결정했고 아시아와 일본을 향한 솔직하고 대담한 발언으로 묵중한 존재감을 남겼다. 그의 중국 연구는 전후 일본사상사에서 가장 중요한 참조축을 형성했고, 일본에 대한 독자적 비판은 마루야마 마사오, 이시모타 쇼(石母田正) 등 전후 사상의 거성들과 함께 하나의 성좌를 이루었다. 다케우치 요시미를 오늘날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그가 일본인의 역사적 주체성을 비판적으로 검토했기 때문이다.
《다케우치 요시미 선집 1-고뇌하는 일본》은 일본을 향한 다케우치 요시미의 비판적 시선을 시기에 따라 4부로 구성했다. 2부 〈근대의 초극〉에서 4부 〈예견과 착오〉는 다케우치 요시미의 전후 논고이다. 특히 3부 〈국민문학론〉과 4부에서는 다케우치 요시미의 실천적이고 활동적인 면모가 드러난다.
1부 〈지나와 중국〉을 통해 전전의 다케우치 요시미가 중국에 대한 침략전쟁과 마주해 어떤 태도를 취했는지 알 수 있다. 2부 〈근대의 초극〉은 전전의 다케우치 요시미가 품었던 사고가 어떻게 전후로 이어졌는지 보여준다. 3부 〈국민문학론〉에는 1950년대 전반 다케우치 요시미가 참여한 논쟁에 관한 저명한 글들을, 4부 〈예견과 착오〉는 1960년에 벌어진 신안보조약 개정 반대운동을 두고 그가 집필한 글들을 모았다.
 
 
4. 《다케우치 요시미 선집 2-내재하는 아시아》의 개요
 
아시아를 향한 관심, 특히 중국을 향한 관심은 다케우치 요시미 사상의 기점이었다. 그는 늘 아시아의 동향에 주목했고 아시아와 일본의 관계를 자신의 문제로 끌어안았다. 부단히 아시아와 마주하는 일, 그것이 다케우치 요시미의 일생을 관통하는 축이자 사상을 낳는 근원이었다. 포스트 냉전 시대를 맞아 중국을 포함해 아시아와의 관계가 일본의 여러 영역에서 긴밀해지고 있다. 아시아와 마주할 수밖에 없는 시대가 도래하자, 그러한 사상적 실천을 일군 사상가의 한 사람으로서 다케우치 요시미가 다시 부상하고 있다.
1부 〈루쉰〉은 다케우치 요시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루쉰》을 제목으로 삼아 전쟁 시기의 글들을 모았다. 그에게 이 시기는 사상의 원점이자 기본적 윤곽이 형성되던 때였다. 2부 〈중국의 근대와 일본의 근대〉는 《현대중국론》에 수록된 글들을 골랐다. 다케우치 요시미의 대표 논문 〈근대란 무엇인가〉를 볼 수 있다. 이 글에는 중국의 근대와 일본의 근대를 아시아에서 두 가지 근대의 유형으로 파악하는 다케우치 요시미 사유의 정수가 담겼다.
3부 〈일본의 아시아주의〉에는 《중국을 알기 위하여》와 나란히 쓰인 사상사 관련 글들이다. 이 무렵 다케우치 요시미는 메이지 이래의 일본사상을 정리하는 작업에 매진했다.
4부 〈강화의 원점〉에는 1972년 일중국교 회복에 즈음해 쓴 글을 담았다. 다케우치 요시미는 전후 일관되게 일본과 중국의 국교 회복을 바라고 있었다. 따라서 그는 일본 정부가 과거를 묻어버리고 가려는 태도를 간과하지 않았다. 다케우치 요시미가 지적한 일중관계의 문제점은 분명 지금도 가시에 찔리듯이 강한 자극을 준다.
 
 
5. 동아시아를 사유하는 방식 ‘방법으로서 동아시아’
― 다케우치 요시미 사상의 특징 1
다케우치 요시미는 일본의 근대를 해명하려면 ‘서양 대 일본’이라는 기존의 이항대립이 아니라 중국을 참조하여 새로운 분석틀을 짜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다케우시 요시미 선집 2-내재하는 아시아》에 수록되어 있는 논문 〈방법으로서의 아시아〉에서 말한다.
 
저는 근대화의 두 가지 형태를 생각할 때, 이제껏 그래 왔듯 일본의 근대화를 늘상 서구 선진국과만 비교할 일이 아니구나 생각했습니다. 학자만이 아니라 보통의 국민들도 그랬습니다. 정치가도 경제계 인사도 모두 그런 식이어서, 정치제도는 영국이 어떠니 예술은 프랑스가 어떠니 곧잘 비교하곤 했지요. 그런 단순한 비교로는 안 됩니다. 자기의 위치를 확실히 파악하려면 충분치 않습니다. 적어도 중국이나 인도 마냥 일본과 다른 길을 걸은 유형을 끌어와 세 개의 좌표축을 세워야 하겠구나, 그 당시부터 생각했습니다.
― 《다케우치 요시미 선집 2-내재하는 아시아》 본문 47쪽.
 
‘서양 대 일본’이라는 이항대립은 오늘날 일반 학문의 틀에서 익숙하게 확인할 수 있다. 그 경우 서양을 중심으로 방사형의 좌표평면이 만들어져 기타 지역들은 서양을 준거 삼아 자기를 인식한다. 그러나 다케우치 요시미는 말한다. “단순한 이원대립이 아니라 좀 더 복잡한 틀을 세워야 하지 않겠느냐고 당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즉 보편과 특수를 서양과 비서양에 배분하는 것이 아니라 보편/특수의 관계를 근저에서 묻고자 서양과의 관계에서 또 하나의 특수로 놓일 중국을 참조축으로 도입한 것이다. 중국을 끌어들인다면 일본의 근대는 달리 표상될 수 있으며, 일종의 전위(轉位) 가능성을 경험하게 된다. 《다케우치 요시미 선집 2권》에서는 그러한 사상적 노정을 확인할 수 있다.
 
 
6. 일본 민족주의와 극우 파시즘과 싸우다
― 다케우치 요시미 사상의 특징 2
 
재일조선인 연구자 윤건차는 “일본인의 아이덴티티를 구성하는 세 개의 기둥은 천황제를 근간으로 하는 ‘폐쇄적 일본 민족주의’ ‘서구 숭배사상’, 그리고 ‘아시아 멸시관’”이라 했다.서구 숭배와 아시아 멸시는 동전의 양면이며 그것은 이질적인 타자에 대한 차별과 편견으로 나타난다. 그것을 떠받치는 장치가 바로 “일본의 고유성과 우월성을 주장하는 내셔널리즘의 중핵을 형성하고, 대내외적으로 억압적?배타적 기능을 담당”해온 천황제이다. 윤건차에 따르면, 바로 이러한 지점에서 마루야마 마사오와 다케우치 요시미의 사상적 작업은 공명한다. 그들은 모두 뿌리 깊은 천황제 국체사상에 어떻게 맞설 수 있는지를 고민했고, 합리주의의 외양을 띤 서구 이론이 횡행하는 일본 사상계에서 고투하였다.
다케우치 요시미의 대표 논문은 〈근대란 무엇인가-일본과 중국의 경우〉(《다케우치 요시미 선집2-내재하는 아시아》 2부〈중국과 일본의 근대〉에 수록)이다. 마루야마 마사오가 일본 근대에 내재된 전근대성을 규탄했다면, 다케우치 요시미는 일본의 무저항적인 근대화에 착목해 일본의 근대를 비판하였다. 단적으로 일본의 황군이 보여준 폭력성에 관해 다케우치 요시미는 강자를 추종하는 ‘노예근성론’으로 해석했다. 그의 문제의식은 ‘일본의 근대’와 ‘아시아의 저항’으로 수렴된다. 그는 군국주의와 침략주의로 점철된 일본의 근대를 통렬하게 비판하였다. 그가 보기에 일본 근대를 규정하는 성격은 ‘저항의 부재’다.
일본에서는 그 어떤 이념도 저항을 통해 자기화된 적이 없다. 개항 이후 유럽을 향해 맹렬하게 돌진할 때는 근대주의를 앞세웠고 태평양전쟁으로 뛰어들 때는 국수주의를 앞세웠으나, 그 변화의 과정에 내적 고통이 따르지 않았다. 패전도 일본의 뒤틀린 근대 구조를 솎아내지 못했다.
다케우치 요시미는 이러한 현상을 ‘전향’이라는 말로 개념화했다. 전향은 “독특한 일본적 성격의 산물”이다. 애초에 일본의 근대는 전향으로 시작되었다. 쇄국에서 개항으로 몸을 틀 때 그들은 내적 갈등을 겪지 않았다. 전향 문화 속에서 일본인은 겉모습을 정반대로 바꾸지만 그것은 내부의 ‘노예적 구조’를 온존시킬 뿐이다. 그리하여 다케우치 요시미는 ‘저항하는’ 루쉰을 매개로 일본의 정신으로 파고든다.
다케우치 요시미의 루쉰은 일본의 근대에서 부재의 존재이다. 일본 근대에 대한 다케우치 요시미 비판의 기준점인 루쉰은 일본에게 여전히 외부이다. 이 외부가 내부의 시선으로 내재화되는 경로가 바로 ‘방법으로서의 아시아’다. 아시아가 아니라면 루쉰의 저항과 절망은 언제나 타자로서 외부화되고 말기 때문이다. 서구와 아시아라는 구도를 전제하지 않을 때, 일본은 자신이 노예인지 모르는 노예이다. 노예는 자신이 노예의 주인이 되었을 때 완전한 노예성을 발휘한다.
 
해방운동의 주체는 자신이 노예임을 자각하지 못하고 자신은 노예가 아니라는 환상 속에 머물면서 노예인 열등생 인민을 노예로부터 해방시키고자 한다. 깨어난 고통을 겪지 않으면서 상대를 깨우려고 한다. 그런 까닭에 별짓을 해보아도 주체성은 나오지 않는다. 즉 깨울 수가 없다. 그래서 주어져 마땅한 ‘주체성’을 찾아 바깥으로 나선다.
  ― 《다케우치 요시미 선집 2-내재하는 아시아》 본문 251쪽.
 
일본의 전후는 패전으로 시작되었다. 패전한 일본 지식인들에게 일본의 민족 문제를 다루는 것은 매우 복잡한 일이었다. 특히 패전에 더해 미국 점령군이 진주하고 도쿄재판을 거치면서 일본의 내셔널리즘과 문화 아이덴티티는 더욱 뒤틀렸다. 일본의 폐쇄적 국가주의와 제국주의로 기울어간 민족주의를 비판하는 수준이라면 비판의 임무와 범위가 비교적 명확하겠으나, 거기에 반미 혹은 전후 일본의 무주체적 상황을 재검토한다는 과제가 더해지면 민족주의에 대한 일방적 비판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전후의 비판적 지식인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이 상황에서 고투하였다. 다케우치 요시미는 일본의 민족주의는 건강한 사회적 에너지를 얻지 못한 채 변질되고 타락했음을 인정했다. 그러나 일본의 민족주의에 관한 다케우치 요시미의 고찰에는 독특한 기본선이 깔려 있다. 그의 핵심적 문제의식은 ‘어떻게 민족주의로 진입하여 건전한 민족주의의 생장을 촉진할 것인가?’였다. 이러한 문제의식이 일본의 우익과 좌익 모두에게 오해를 사기도 하였다. 전후 피점령의 상황에서 서양 근대의 가치관을 수용한 일본 사상계의 소위 ‘근대주의’ 추세는 우익 민족주의를 방지했다는 진보적 의의를 갖지만, 건전한 민족정신을 형성하는 데는 실패하였다. 다케우치 요시미는 바로 그 지점을 자기 사유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다케우치 요시미는 침략군의 일원으로 중국 전장에서 일본의 패전을 맞이했다. 마루야마 마사오도 군인이었지만, 일본의 본토에서 패전을 맞이했다. 마루야마 마사오는 일본의 패전을 환영하였다. 본토에서 포츠담선언의 발표를 직접 접한 마루야마 마사오는 “기본적 인권은 존중되어야 한다.”는 구절을 보고는 몇 해 동안 본 적 없는 낯선 글귀에 놀라 “얼굴의 근육이 자연스레 풀리는 것을 자제할 수가 없었다.” 마루야마 마사오는 희색 만연한 얼굴을 사람들에게 들킬까봐 감정을 억제하는 데 많은 힘을 썼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전해들은 다케우치 요시미는 이렇게 쓴다. “이 말을 듣고 나서 나는 감동했다. 그리고 나 자신을 돌이켜보며, 이러한 경험을 갖지 못해서 유감이며 후회도 됐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이다. “천황의 방송은 항복 아니면 끝까지 항전하라는 호소일 거라 생각했다. 더군다나 나는 후자라고 예상했다. 여기에 일본 파시즘에 대한 나의 과대평가가 있다. 나는 패전을 예상했지만, 저렇듯 국내에서 어떤 이의도 없는 패전을 예상하지 못했다.” 여기서 다케우치 요시미는 “희열, 비애, 분노, 실망이 뒤섞인 기분”을 맛봤다.
1945년 8월 15일이라는 역사적 시간에 관해, 그리고 패전을 둘러싸고 다케우치 요시미와 마루야마 마사오가 가졌던 서로 다른 체험과 정치감각은 이후 그들 일생에서 사상 궤적의 차이를 결정지었다. 마루야마 마사오가 일본의 병리상태를 진단하였다면, 다케우치 요시미는 패전 순간의 ‘희열, 비애, 분노, 실망’이라는 복잡한 감정에서 전후 사상을 출발하였다.
 
 
7. 일본 사상계의 서구 숭배를 비판하다
― 다케우치 요시미 사상의 특징 3
 
《다케우치 요시미 선집1-고뇌하는 일본》에 그 흔적이 많이 담겨 있다. 다케우치 요시미와 마루야마 마사오는 전후 일본 사상계에서 횡행하는 서양 추종주의를 비판했다. 비판의식과 문제의식으로 충만한 서구지성의 사유가 일본의 맥락 속에서 탈맥락화되면, 상황을 처리하는 해답처럼 기능하고 때로는 패권적인 양상을 띤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서구지성의 사유가 추상화되거나 방법론으로서 직접 응용되면 그 사유가 지닌 생명력, 그것이 출현한 사회 내지 시대와 맺고 있는 긴장감은 말살되고 사상이라면 사상으로 살아 있을 수 있는 이유, 즉 틀릴 수 있다는 상대성을 상실하고 만다. 더욱이 서구의 지적 유산을 여과 없이 일본에 적용한다면, 일본 사회를 이해할 때 단순화가 발생한다. 즉 자기가 속해 있는 사회의 어떤 면모가 그 지적 유산의 징후로 파악되는 것이다.
다케우치 요시미는 말한다. “지식은 그것을 부정하는 계기가 없어서는 지식으로서의 생명이 없다. 지식은 부정되기 위해서 추구되어야 한다.” 그는 개념세계의 유한성을 꿰뚫어 보며, 지식의 언어로 구축된 세계와 그 언어가 개재하지 않는 피부감각의 세계 사이의 단층을 주시하였다. 생활감각과 실감으로 뒷받침되지 않는 이론은 공허해지며, 거꾸로 세계관에 의해 방향 지어지지 않은 생활감각은 맹목적이 된다는 것이다.
전후 일본 사상계에서 주도적 지위를 차지했던 것은 다케우치 요시미가 비판한 우등생식의 근대적 사고였다. 이들은 일본의 토착적인 ‘육체 감각’을 봉인한 채 이와 무관한 서양의 담론을 끌어들여 일본의 문제를 검토한다. 그것은 단순한 선입견으로 진정한 문제를 가려버린다. 이렇듯 현실과 사고가 엇갈려서는 기존 일본의 민족주의를 구해낼 수 없다. 또한 현실에서 어긋난 사고방식으로서는 민족주의를 부정하거나 국가형태를 비판해도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는 그러한 엇갈림을 먼저 백일하에 드러내고, 그로써 전후 일본 사상계에서 자기형성의 계기를 움켜쥐는 데 있다. 다케우치 요시미는 바로 그 작업에 나섰다.
 
그러나 ‘과거의 시대’라는 게 과연 실체로 존재할까. 존재한다 해도 그것이 자연의 시간을 뜻할까. 역사적 시간으로서의 ‘과거’도 어딘가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 요컨대 그것은 ‘실체’가 아니다. ‘역사’를 하나의 고정된 ‘사물’로 간주하는 습관이 오랫동안 사람들의 잠재의식을 좌우했는데, 거기서 이른바 육체적 역사 감각, 나아가 육체적 ‘역사 진실’이라는 인식이 재생산된다. 즉 역사를 부동의 대상으로 인식하고, 꿈쩍도 않는 역사를 자신은 완전히 바깥에 서서 통째로 파악하고, 또 절대적 의미에서 ‘객관화’할 수 있다는 발상이 버젓이 통용되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인식 문제는 일본의 패전 이래 ‘학문’의 영역을 넘어 정치투쟁의 수단으로 줄곧 다뤄져 왔다. 전쟁 범죄의 ‘진실’을 부정하는 사회적 동향 속에서 과거를 정치적으로 개찬하려는 의도가 상식의 옷을 입고 표현되었다.
― 《다케우치 요시미 선집 1-고뇌하는 일본》, 〈쑨거의 추천사〉 본문 5쪽.
 
 
8. 쑨거의 새로운 개념, 아시아라는 사유공간
― 마루야마 마사오?다케우치 요시미 사상을 계승한 쑨거
 
다케우치 요시미의 제자인 중국 사회과학원의 쑨거는 마루야마 마사오에게 “중국(아시아)은 존재하지 않는가?”라는 물음을 던진다. 이 물음은 다케우치 요시미를 염두에 둔 것이다. 다케우치 요시미는 일본의 근대란 서구의 근대와 관련해서만이 아니라 아시아의 근대 속에서 다가가야 한다고 이해했다. 즉 일본과 아시아(중국)를 대비할 때 일본에게는 타자로 설정되는 아시아가 서구와의 관계 속에서라면 일본의 내부로 들어온다는 점을 착목한 데에 다케우치 요시미의 아시아라는 문제설정의 의의가 있다.
마루야마 마사오는 타자와의 소통관계를 부단히 마련하면서 중심부의 이데올로기적 동일시를 흔드는 지식인의 지적 책임을 문제로 내놓았는데, 쑨거는 바로 다케우치 요시미의 아시아론을 경유해 마루야마 마사오의 과제를 계승한다. 진정한 사상은 내부의 시선만으로는 열리지 않는다.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진행되는 저항의 체험을 통해서만 사상은 성장할 수 있다. 쑨거는 국민국가 체제의 경계를 넘나들고 때로는 그 경계선이 희미해지는 공간에서 새로운 사상적 주체 형성의 가능성을 탐사한다. 그녀는 이 과제를 주로 중국과 일본의 관계 속에서 풀어나갔다. 특히 특수한 역사적 관계의 적층으로 형성된 서로에 대한 단순한 이미지의 반복적 재생산과 강화, 그리고 그러한 재생산과 강화를 통해 더욱 공고해지는 국민국가 체제에 강한 의문을 제기하고자 하였다.
그래서 쑨거가 사유하는 장소를 ‘아시아라는 사유공간’이라 부른다. 국가의 경계선을 넘어 (동)아시아의 역사적 경험과 사상을 자신의 지적 원천으로 삼으며, 단일한 집단적 정체성으로 수렴되지 않는 각자의 고뇌가 대면하여 열리는 공간. 새로운 집단적 공동체의 표상에 의해서가 아니라 경계선에서 또 임계점에서 형성되는 주체들의 공간. 자기동일성과 정체성에 균열이 일어나는 공간. 세 사상가는 그러한 사유의 공간을 우리에게 주는 것이다.
 
 

저자소개

다케우치 요시미(竹內好) (저자)
1910년 나가노현에서 태어났다. 도쿄제국대학 문학부 지나철학 지나문학과를 졸업했다. 1934년 ‘중국문학연구회’를 결성하고, 기관지 《중국문학월보》를 창간했다. 1937년부터 2년간 베이징에서 유학했으며, 1943년에는 육군에 소집되어 중국에서 패전을 맞이했다. 전후에는 1953년 도쿄도립대학 인문학부 교수가 되었으나, 1960년 안보조약 반대운동 중에 국회의 조약체결 강행에 항의해 사직했다. 1954년에는 ‘루쉰의벗모임’을 창립하고 기관지 《루쉰의벗모임 회보》를 발간했다. 1963년부터 1973년까지 ‘중국의모임’을 조직해 잡지 〈중국〉(총 110호)를 발행했다. 1977년 《루쉰 문집》 번역에 매진하던 중 암으로 사망했다.
저서로는 《루쉰》, 《루쉰잡기》, 《현대중국론》, 《일본이데올로기》, 《일본과 아시아》, 《루쉰 입문》, 《국민문학론》, 《지식인의 과제》, 《불복종의 유산》, 《중국을 알기 위하여》, 《예견과 착오》, 《상황적》, 《일본과 중국 사이》, 《전형기》 등이 있으며, 1982년 《다케우치 요시미 전집》(17권)이 간행되었다. 역서로는 《루쉰 평론집》, 《루쉰 작품집》, 《루쉰 문집》 등이 있다.

마루카와 데쓰시(丸川哲史) (역자)
메이지대학 정경학부 조교수. 저서로 《냉전문화론》, 《리저널리즘》 등이 있으며, 다케우치 요시미에 관한 책으로 《다케우치 요시미-아시아와의 만남》을 썼다.

엮은이―스즈키 마사히사(鈴木?久)
메이지대학 정경학부 조교수. 공저로 《전시 상하이》,《권력/기억》 등이 있으며, 다케우치 요시미에 관한 논문으로 〈다케우치 요시미의 중국관〉, 〈다케우치 요시미와 《루쉰》〉 등이 있다.


옮긴이―윤여일
수유너머 R 연구원. 서울대 사회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동아시아 사상사에 관심을 갖고 2007년에서 2009년까지 일본에서 공부했다. 이때 그의 스승이 마루야먀 마사오와 다케우치 요시미 연구자인 쑨거였다. 쑨거는 다케우치 요시미의 제자였다. 2년여 기간 동안 쑨거 선생과 공부하고 관련 책을 번역하면서 마루야먀 마사오와 다케우치 요시미, 쑨거로 이어지는 동아시아 사상을 깊이 있게 접하였다. 다케우치 요시미에 관한 책으로 《다케우치 요시미라는 물음》을 번역했고, 다케우치 요시미에 관한 논문으로 〈내재하는 중국〉,〈방법으로서의 동아시아〉를 썼다. 《인물과 사상》에 ‘여행의 사고’를 연재했고, 《오늘의 문예비평》에 ‘지식의 윤리성’을 연재하고 있으며, 프레시안에 ‘동아시아를 묻다’ 공동연재를 시작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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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케우치 요시미 선집 1 -고뇌하는 일본

차례

추천의 글_ 왜 지금 다케우치 요시미인가 / 쑨거
책을 펴내며_ 마루카와 데쓰시


서(序)
굴욕의 사건

1부 지나와 중국
지나와 중국
대동아전쟁과 우리의 결의(선언)
대동아문학가대회에 관하여
《중국문학》 폐간과 나

2부 근대의 초극
나라의 독립과 이상
근대의 초극

3부 국민문학론
중국문학의 정치성
내셔널리즘과 사회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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