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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사록, 조선 선비의 중국 강남 표류기 - 조선 지식인 최두찬이 겪은 예기치 않은 운명의 기록

최두찬(저자) 박동욱(역자) | 휴먼인문 | 20,000원 | 2011.05.23 | 544p | ISBN : 978-89-5862-386-1 | 9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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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사록, 조선 선비의 중국 강남 표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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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선비 최두찬이 겪은 예기치 않은 운명의 기록 《승사록(乘?錄)》은 조선의 학자 최두찬(崔斗燦, 1779~1821)이 일행 50명과 함께한 16일간의 표류 체험과 중국 영파(寧波)에 닿은 뒤 귀환에 이르는 4월 8일부터 10월 2일까지의 기록이다. 조선의 지식인에게 비춰진 강남(江南)의 모습은 어떠했으며, 강남의 지식인을 통해 무엇을 느꼈을까? 중국의 지식인들은 최두찬이 강남에 체류했을 때 거의 매일 그를 방문한다. 조선의 일개 거인(擧人)에게 그들은 왜 그렇게 열광적인 반응을 했으며, 그들은 그의 어떤 점에 흥미를 느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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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1. 조선 선비 최두찬이 겪은 예기치 않은 운명의 기록 이 책의 개요
 
18세기 지식총서 다섯 번째 책 《승사록, 조선 선비의 중국 강남 표류기》가 발간되었다. 이 책은 조선 후기의 학자 최두찬의 중국 강남 표류기이다. 최두찬은 1817년(순조 17년) 제주 대정현의 현감이 된 장인의 간곡한 청으로 그해 5월 제주도로 간다. 1년 동안 제주도를 두루 보고 1818년 4월 귀향하는 배에 몸을 실었으나 도중에 큰 풍랑을 만나 16일 동안 표류하다가 중국의 강남(江南) 지역에 발을 디뎠다.
《승사록, 조선 선비의 중국 강남 표류기》는 조선의 선비 최두찬이 제주도에 있을 때 지은 시편, 일행 50명과 함께 한 16일간의 바다에 표류하는 어려운 상황, 바다를 떠돌다 뭍에 닿은 시기, 육지에 내린 뒤에 길을 다니면서 보았던 중국의 비롯한 여러 나라의 풍속과 산천 명승과 중국의 지식인과 시장(詩章)을 서로 화답한 것, 필담으로 문답한 것과 가옥, 의복, 농사, 무덤, 배와 수레의 설을 날마다 일기로 남겼다. 그는 1818년 10월 3일에 드디어 압록강을 건너 조선으로 돌아온 4월 8일부터 10월 2일까지 6개월 동안의 중국견문기이다. 조선의 지식인에게 비친 중국 강남의 모습은 어떠했으며, 그는 강남의 지식인과의 교류를 통해 무엇을 느꼈을까? 중국의 지식인들은 최두찬이 강남에 체류했을 때 거의 매일 방문한다. 조선의 평범한 선비에게 그들은 왜 그렇게 열광적으로 반응했으며, 그의 어떤 점에 흥미를 느꼈을까?
 
2. 한국 표류문학의 지평을 넓혀줄 소중한 기록의 보고 이 책의 특징 1
통상 표류 체험을 담은 작품은 표류의 경위와 과정, 표착(漂着) 장소에서의 체험, 귀환의 과정 등으로 구성된다. 표류의 경위와 과정에서는 죽음과 삶의 순간이 급박하게 펼쳐져 있으므로 어떤 기록보다 박진감과 사실성이 뛰어나다. 표착 장소에서의 체험에서는 이방인의 눈으로 본 타국의 진기한 풍속과 풍물에 대한 다양한 기록이 펼쳐져 있다. 그리고 귀환의 과정에서는 지리적 정보 등과 귀환 과정에서 느끼는 다양한 심적 변화를 엿볼 수 있다.
표류는 예기치 않은 운명의 기록이다. 그러한 점에서 정식 사행인 연행사나 통신사와는 다른 점이 분명히 존재한다. 표류는 비공식이고 무계획적인 일련의 사건이 연속된다. 그러기에 역동적이며, 다양한 시점이 존재한다. 표류의 기록은 두 나라의 문화가 접촉되는 충격과 경이를 담고 있어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표해록은 1488년에 최부(崔溥)가 지은 《표해록(漂海錄)》이다. 표류 관련 연구는 대부분 최부의 《표해록》에 집중되었다. 이번에 번역된 《승사록, 조선 선비의 중국 강남 표류기》는 표류기 중에서는 가장 최근에 지어진 1818년 작품이다. 《승사록》에는 흥미로운 정보를 많이 담고 있어서 주목된다. 조선의 지식인에게 비춰진 강남(江南)의 모습은 어떠했으며, 강남의 지식인을 통해 무엇을 느꼈을까? 중국의 지식인들은 최두찬이 강남에 체류했을 때 거의 매일 그를 방문한다. 조선의 일개 거인(擧人)에게 그들은 왜 그렇게 열광적인 반응을 했으며, 그들은 그의 어떤 점에 흥미를 느꼈을까? 이러한 궁금증의 해명을 통해서《승사록》의 가치를 재조명하는 책이다.
최두찬은 43년의 생애를 살았다. 유사(遺事)나 묘갈명(墓碣銘)이 남아 있지만 더 자세한 이력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특별한 관직을 맡았던 적이나, 주목할 만한 사람들과 교유한 기록은 찾을 수 없으나그가 남긴 표류에 대한 기록은 온전하다. 최부의 《표해록》을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기록이 많지 않은 형편이다. 최두찬의 《승사록》은 표류문학의 지평을 한 단계 넓혀줄 수 있을 것이다.
 
 
3. 19세기 중국 강남의 풍속을 사실적으로 담아내다 이 책의 특징 2
중국의 강남은 조선 사람들에게 동경과 미지의 땅이었다. 주원장이 금릉을 남경이라 개칭한 뒤 도읍으로 삼고, 이후 영락제가 북경으로 천도한 것이 1421년이었다. 명의 건국으로부터 북경 천도까지의 이 50여 년 간이 봉명사행(奉命使行)으로서의 강남 기행이 가능했던 시기였다. 이 시기에 이루어진 대표적인 봉명사행의 기록물은 정몽주의 《강남기행시고(江南紀行詩藁)》, 권근(權近)의《봉사록(奉使錄)》, 그리고 이첨(李詹)의 《觀光錄》등이다. 이때 이후로는 공식적인 사행이 북경 인근을 벗어나 강남 땅을 밟는 경우는 없었다.
이런 이유로 강남은 조선 지식인에게는 상상의 공간이었다. 강남에 대한 동경은 강남열과 서호도로 표출되기도 하였다. 강남땅은 표류를 통하지 않고서는 갈 수 없는 땅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최두찬의 《승사록》은 최부의 《표해록》에 필적할 만큼 강남(江南)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담고 있다.
최두찬은 강남에서 한 달이 넘는 기간 동안 체류한다. 그가 강남의 풍물에 대한 기록은 남긴 곳은 절강성(浙江省 ) 지역이다. 그는 이곳을 경유하면서 강남에 대한 풍부한 물산과 화려한 의복, 건축물에 대해 상당히 많은 기록을 남기고 있다.
 
내가 그를 따라서 성에 들어서니 곧 상화의 집이었다. 높은 문은 우뚝 솟아 있고, 하얗게 칠한 담이 둘러 있었다. 당에 오르니 침상과 탁자가 많았는데, 붉은색 융단이 덮여 있었다. 마당의 섬돌은 모두 벽돌을 깔아 한 점의 흙도 없었으니 월중(越中)의 갑부인 것을 알게 되었다. 자리에 앉으니 상화가 나에게 집 안팎을 구경하자고 하였다. 담장이 둘러져 있고 이중벽이어서 사람의 마음과 눈을 놀라게 만든다. 정침(正寢)에 이르니 곧 동서에 있는 곁방에 은으로 만든 병을 벌여놓았는데, 몇 백 개나 되는지 알 수 없었으며, 금수(錦繡)와 능라(綾羅) 같은 종류가 모두 이와 같았다. 본문 120쪽, 〈5월 5일 중국 선비의 집을 처음으로 방문하다〉에서
 
 
4. 중국인에 대한 관심과 교유의 심화 이 책의 특징 3
 
최두찬이 강남에 체류할 때 거의 매일 여러 명의 중국인이 방문한다. 그는 낯선 땅에서 중국인들을 만나 필담(筆談)과 창수(唱酬)를 나눈다. 결국 그들은 한자(漢字)라는 공통적인 문자를 통하여 동아시아 의 지식 정보를 서로 공유한다. 최두찬은 풍부한 인문학적 소양으로 강남 선비들과 학적 네트워크를 구성하였다. 특히 그의 문학적, 지리적인 해박한 지식이 그들을 감동시켰고, 그들 또한 그에 대한 호기심을 통해서 조선에 대한 호기심으로 영역을 넓혀나갔다. 그는 그들에게 무엇을 보았으며 무엇을 느꼈을까? 《승사록, 조선 선비의 중국 강남 표류기》는 조선의 선비 최두찬과 중국 지식인들이 얼마나 많은 필담을 나누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이다.
 
 
이때 절강(浙江)에 있은 지가 이미 오래되었다. 함께 종유하던 사람들이 모두 남방 선비들 중에 공명(功名)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간혹 필담을 주고받거나 이따금 시문을 창화하니 관아의 하인이나 저자 사람들은 거기에 끼지 못하였다. 차례대로 글을 전하여 승루로부터 여러 방장(方丈)에 이르기까지 붓을 들고 글씨를 쓰는 사람들을 이루 다 셀 수 없었다. 담장과 뜰 사이에 때때로 종이 쪼가리가 남은 것을 보게 되면 전부 다 내가 중국 사람들과 나눈 대화들이었다.
이당(李堂)이 말하였다.
“백 세 뒤에 절강 땅에 사는 사람들이 선생께서 이곳을 지났다는 것을 알 겁니다.”
그 말이 장난스럽기는 하지만 또한 실제로 있을 법한 말이었다. 본문 254쪽, 〈6월 6일 승사록을 읽고 지어준 시를 받다〉에서
 
 
5. 휴머니스트 18세기 지식 총서 소개
 
18세기 조선은 전근대 사회를 이해하는 핵심 표지다. 다른 시대에 비해 풍부하고 다양한 소재와 자료들이 제공되고, 그에 관한 연구나 저술도 풍성하다. 그만큼 학계나 일반인의 관심도 집중되고 있다. 영정조 시대, 실학시대, 문예부흥기로 불리는 이 시대가 이런 위상을 지니는 이유는 분명하다. 세계사적 변혁의 시대인 18세기에 조선 역시 전통과 반전통, 구시대적인 것과 신시대적인 것, 보수와 진보 등 대립적인 것들이 동시다발적으로 강력하게 분출되었기 때문이다. 18세기 조선은 변화의 물결이 도도하게 휘몰아쳤던 열망의 무대이자 다양한 조류 속에 전통과 이념의 굴레를 벗어나려는 역동적 힘이 솟구치는 장이었다.
당대의 역동성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포함한 다양한 측면에서 나타나지만, 지식인의 사유 속에서도 잘 드러난다. 새로운 관점과 지식이 이전 어느 시대보다 폭넓게 저술로 구체화되었다. 그리하여 전통적 지식의 내용과 틀에서 벗어난, 낯설고 이국적인 지식이 전통적인 것과 함께 학문의 영역으로 침투해 들어왔다. 조선에서 18세기는 세계를 보는 시각과 초점의 다양성을 드러낸 시대였다.
이 지식 총서는 18세기 조선의 지적 신선함을 잘 보여주는 문헌을 현대인과 함께 공유하고자 하는 기획이다. 18세기에도 낯설었던 지식의 최전선에 있던 문헌들은 19세기 이후로부터 최근까지 관심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그런 것들이 근래 학계에서 새로운 의의를 발산하며 발굴되고 재해석되고 있다. 시기적으로는 18세기에 속하는 자료가 많고, 일부는 19세기 전반기에 나오기도 하였다. 지식 총서에 선보이는 책들은 대체로 특수한 주제를 집중적으로 파고든 단행본이고, 각각의 단행본은 분량이 그리 많지 않다. 이른바 소품서(小品書)에 속하는 책들이 많다. 그러나 그들의 주제는 참신하고 시각은 예민하다.
휴머니스트의 18세기 지식 총서는 지금까지 네 권이 발간되었다. 이옥의 《연경, 담배의 모든 것》, 정운경의 《탐라문견록, 바다 밖의 넓은 세상》, 홍경모의 《사의당지, 우리 집을 말한다》, 이시필의 《소문사설, 조선의 실용지식 연구노트》이다. 이옥은 담배와 관련된 지식을 체계화하였고, 정운경은 동아시아 세계을 체험한 제주도의 표류민과 관련한 사실을 기록하였으며 홍경모는 사대부가의 주거문화를 남겼다. 이시필은 해외에서 습득한 당대 최고 수준의 지식을 자신의 필요에 따라 초록하고 편집한 18세기 생활문화 백과사전을 집필하였다.
네 저작은 당시 조선 사회의 생생한 일상뿐만 아니라, 전지구적 관계맺음의 실상을 잘 보여준다. 당대 지식의 첨단에 놓인 주제들이었고, 이후 이를 계승한 저술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매우 독보적이고 독창적인 저술이다. 저작 자체가 관심 밖에 있다가 최근에야 발굴되었다.
앞으로도 꽃과 차, 저택 설계와 건축, 기생과 문방구 등 특정한 주제를 다룬 독창적인 저작들을 총서의 명단에 올리고자 한다. 선정된 문헌들은 현대인의 지적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선명하고도 매력적인 주제를 담고 있으며, 최근에 새로이 발굴되거나 주목을 받은 저작들로써 대개 한 번도 번역된 적이 없는 책이다.
이 총서를 통해 다른 시대를 초월한 우월한 시대로 18세기를 자리매김하거나 특정 주제와 저작을 18세기적 특징의 중심에 놓으려고 시도하는 것은 아니다. 한 시대를 보는 시각이 어디 하나에 고정되는 것은 안 될 일이다. 정치와 경제, 사회와 문화를 큰 차원에서 읽는 거시적 관점도 필요하고, 취미나 기예, 각종 일상생활을 미시적으로 보는 관점도 필요하다. 이 총서는 후자의 입장에서 전자를 보완해 18세기를 더 넒은 시각으로 이해하는 데 기여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18세기 전후 시대의 지적 사유에 대한 관심이 촉발되기를 기대한다.
 
 
 

저자소개

최두찬 (저자)
지은이 최두찬(崔斗燦, 1779~1821) 본관은 영천(永川)이며 자는 응칠(應七), 호는 강해산인(江海散人)이다. 그는 어려서 영특하고, 효성이 지극하여 효동(孝童)이라 불렸다. 1817년에 제주 대정현의 현감이 된 장인의 간곡한 청으로 5월 제주도에 함께 갔다. 1년 동안 제주를 두루 보다가 1818년 4월에 귀향하는 배에 몸을 실었다. 도중에 큰 풍랑을 만나 16일 동안 표류하다가 중국의 강남지역에 발을 딛었다.
제주도에 있을 때 지은 시편, 바다에 표류하는 어려운 상황, 육지에 내린 뒤에 중국 강남의 풍속과 산천 명승, 중국의 선비와 시장(詩章)을 서로 화답한 것, 필담으로 문답한 것, 가옥?의복?농사?무덤?배와 수레 등의 이야기를 날마다 기록한 《승사록(乘?錄)》을 지었다.
박동욱 (역자)
한양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성균관대학교에서 박사 과정을 수료하였습니다. 현재 한서대학교 부설 동양고전연구소 연구원으로 있습니다. 2001년 《라쁠륨》 가을호에 현대시로 등단했고, 공저로 《살아있는 한자 교과서》와 《혜환 이용휴 시전집》 등을 펴냈습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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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 서문
서설 - 조선 선비 최두찬이 겪은 예기치 않은 운명의 기록

서문1
서문2

1장 1818년 4월 - 표류, 예기치 않은 운명의 기록
2장 1818년 5월 - 강남의 선비와 만 리의 정을 나누다
3장 1818년 6월 - 귀환길에서 고초를 겪다
4장 1818년 7월 - 드디어 북경에 도착하다
5장 1818년 8월 - 산해관을 지나다
6장 1818년 9, 10월 - 조선 땅을 목전에 두다

[부록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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