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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 그 사이의 한국 1895~1919

앙드레 슈미드(Andre Schmid)(저자) 정여울(역자) | 휴먼인문 | 28,000원 | 2007.08.17 | 756p | ISBN : 978-89-5862-193-5 | 0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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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 그 사이의 한국 1895~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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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 한국출판인회의 선정 이달의 책(9월)

한국 민족주의의 기원과 역사를 계보학적으로 탐사한 《제국 그 사이의 한국 1895~1919(Korea Between Empires 1895~1919)》. 이 책은 19세기 말 20세기 초 한국의 역사에 초점을 맞추면서 어떻게 근대적 지식의 개념과 상징이 창조되었는지, 나아가 어떻게 근대 초기의 지식이 민족적 정체성, 네이션-스테이트, 그리고 민족주의에 대한 한국인의 근원적 인식을 창조하는 정치적 기획으로 통합되었는가를 탐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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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차갑고 내밀하게 응시한 한국 민족주의의 역사

앙드레 슈미드(Andre Schmid)는 한국의 민족주의 연구에서 그동안 간과되어왔던 다양한 표상, 서사, 그리고 수사학을 집중적으로 파헤치고 있다. 그는 20세기 초 사회적·정치적 격변기를 겪고 있던 한국 근대의 문화적 전제들의 형성 과정, 그리고 당시 한국의 주요 언론들(대한매일신보, 독립신문, 황성신문, 제국신문 등)에 확연히 나타난 언어적 전환들을 추적한다.
근대 초기의 신문은 네이션의 개념을 상상할 수 있는 최고의 위치에 있었으며, 독자들로 하여금 성리학적 사상과 왕조 중심적 사유에서 벗어나 자본주의적 근대로 나아가는 세계사적 보편성의 이데올로기로 진입할 것을 요구했다. 민족에 대한 지식의 생산자이자 전파자로서 신문들은 독자들로 하여금 중국과 일본의 제국주의적 야심의 한가운데서 위기에 처해 있던 한국의 상황을 인식하게 만드는 중재적 역할을 했으며, 한국 민족주의 운동의 부흥에 있어 결정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우리는 슈미드의 창조적이고 철저한 연구에서 애국계몽기 한국의 지식인들이 어떻게 자신들이 속한 사회를 민족 공동체로 재인식하기 시작했는가를 대면하게 된다. 설득력 있는 논증과 주도면밀한 문장으로 쓰인 역작이다. 또한 슈미드는 한국과 일본을 이해하는 데 있어 기존의 역사학계에서 보편적인 담론으로 기능했던 식민지와 피식민지의 이분법에 강력하게 도전하고 있다. 그의 책은 우리에게 한국 민족주의 운동에 대한 다양한 이미지를 풍요롭게 제공해줄 것이다.


국가 없는 나라에서 ‘민족’ 발명하기

1895년에서 1910년까지, 한국은 사라져가는 제국과 이제 막 떠오르는 제국 사이에서 표류하고 있었다. 개항 이전까지 조선에 있어 말 그대로 세계의 중심(中華)이었던 중국은 ‘과거의 제국’으로 스러져가고 있었고, ‘왜구(倭寇)’의 오명을 씻지 못했던 일본은 명실상부한 근대국가로서 ‘미래의 제국’으로 부상하고 있었다. 국가, 국권, 국민 등의 개념이 이제 막 발견되기 시작한 시기. 아이러니컬하게도 조선은 국권이 발견되자마자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었다. 애초에 중화라는 단위 없이는 자국의 울타리를 상상할 수 없었던 조선은 처음으로 중화의 비호 없이 자국을 인식해야 했다. 민족을 단위로 하는 국가, 즉 네이션스테이트(Nationstate)의 탄생은 근대 초기의 전 세계적 패러다임이었다. 그러나 조선은 아직 ‘국호’조차 제대로 확정되지 않은 상태였다. ‘조선’은 무너져가는 왕조의 낡은 표상이었으며 ‘코리아’ 역시 외국인이 편의에 따라 발음한 특정 왕조(고려)의 명칭일 뿐이었기 때문이다. 아직 나라의 이름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도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자국(조선)의 역사는 매우 가변적이면서도 불확실한 유동체였다.


‘민족’의 개념과 자의식, 그 기원의 풍경들

“민족주의는 위기를 먹고 자란다.” 이 책의 1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한국의 민족주의가 발생 초기부터 그토록 강력한 에너지를 발산하게 된 배경에는 당시의 ‘내우외환’이 절정기에 이르렀다는 국내외적 정세판단이 깔려 있었다. 격류를 헤쳐 나가는 연약한 배, 붕괴될 위기에 처한 낡은 집, 병든 몸 등의 다채로운 은유는 바로 ‘민족’을 향한 것이었다. 가마솥에서 끓고 있는 생선, 둥지에 불이 붙은 제비들, 광주리에 갇힌 까마귀 등은 위기에 처한 ‘백성’을 가리키는 은유였다. 위기가 없다면 민족은 굳이 힘주어 강조될 필요가 없다. 아울러 민족은 위기 자체를 과장하고 확산시키는 촉매이기도 했다.
모든 담론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여, 그 천차만별의 무질서한 담론들을 ‘민족’이라는 기표 아래 질서정연하게 정렬시키는, 가공할 집단적 동원의 힘. 그것이 ‘민족’이라는 표상의 위력이었다. 슈미드는 이렇게 서술한다. 사회적·경제적·정치적·문화적 삶의 무수한 파편들을 민족의 카테고리로 묶어낼 수 있었다는 사실이야말로 민족주의의 힘이라고. 이 시기는 그 어떤 때보다 ‘입으로 하는 정치’가 클라이맥스를 이루었던 시기다. 고위관료가 문/무로 나뉘어 정치담론을 전유했던 과거의 정치적 아비투스를 넘어, 촌로와 아이들까지 ‘민족’과 ‘문명’의 캐치프레이즈 아래로 소환되었던 국민 국가 만들기의 카오스적 운동. 모든 글쓰기에서 ‘전쟁’과 ‘무예’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상무정신’이 최대의 화두로 떠올랐으며, 실제 영웅은 희귀했지만 영웅에 대한 연설과 글쓰기는 연일 신문지상을 수놓았던 영웅담론의 전성시대. 실제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신문의 지면 전체가 공동체의 총체적 위기에 맞서는 전쟁의 은유로 범람했던 시기. 펜을 든 무사들이 민족공동체의 핵심 브레인이 되었던 시기. 이 시기가 바로 1894~1910년경이다.


민족의 심장, ‘역사’의 재구축

‘민족’이라는 개념은 명백한 실체인 양 발견되었지만, 민족의 실체는 모호했다. 현실의 민족은 구원의 가능성이 희박하고, 민족에 대한 집단적 열망은 급증했다. 이에 따라 ‘민족’이라는 개념 자체가 두 차원으로 갈라지게 된다. 바로 민족의 육체와 정신을 분리하는 사유방식이다. 이 시기에는 국혼, 국수 등 민족의 정신적 측면들을 강조하는 언표들이 대거 등장한다. 민족의 실체가 국권이나 영토 등의 기본적 권리를 보장받지 못했기에, 즉 민족이라는 주체가 발견되자마자 주체의 실체는 곧바로 상실되었기에, 민족은 더더욱 정신화/추상화된다. 이를 통해 역사/언어학(국사학/국어학) 및 종교적 담론들(동학, 대종교 등)이 발달하게 된다. 언어, 종교, 역사 속에서 민족의 구원 가능성을 극대화시키는 것이 당시 한국 민족주의의 특징으로 자리 잡았던 것이다. 국권과 국토는 쉽게 점령당했지만 국수(언어, 종교, 역사, 문화 등)는 절대로 빼앗길 수 없다는 것이 민족주의 운동의 다양한 분파를 가로지르는 공통분모였다. 민족의 외형적 구심점들은 점령당했지만 민족의 내면적 컨텐츠는 사수되어야 한다는 논리였다.
  발견되자마자 신기루로 판명되었던 ‘문명’과 ‘계몽’이라는 미궁에서 벗어날 수 있는 민족의 새로운 구심점은 바로 ‘역사’였다. 민족의 역사가 지나치게 정신화되고, 역사의 주체가 곧바로 ‘민족’으로 환원되는 현상은 바로 이 시기의 민족주의 운동에서 연원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민족사의 발견과 정립에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상가가 바로 신채호였다.


문명의 메카, ‘신문’의 탄생과 지식인

이 책에 제시된 자료의 대부분은 민족주의 혹은 민족에 관한 지식을 유포한 지식인들의 기사 및 각종 잡지의 투고들이다. 이 시기가 외형적으로는 ‘민족주의 탄생의 시대’로 요약되지만, 그 내부에서는 ‘지식인의 탄생’이라는 강력한 사회적 동력이 작동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민족이 발견되는 순간 지식인이 탄생했던 것, 아니 민족을 제대로 탄생시키기 위해서는 지식인의 글쓰기가 끊임없이 요구되었다. 당시에는 지식인이라는 단어 자체는 거의 쓰이지 않았지만, 지식을 다루는 사람들의 중요성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었다. 수없이 학교가 세워지고, 학교를 세우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 자체가 혁명적으로 인식되던 시기였다. 또한 ‘너희들은 모르는 것을 내가, 혹은 우리가 알려주리라’로 요약되는 근대적 엘리트주의의 탄생은 양가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중세 이전까지의 양반/상민의 구분이 분명했던 시기에 지식은 ‘전파’를 위한 것이 아니라 특정 계급 내부의 폐쇄적 향유를 지향하는 것이었다. 한국의 근대 초기는 역사상 거의 최초로 지식인의 의무 자체가 대중을 계몽하는 것으로 각인되었던 시기였다. 당시는 문사와 백성, 필자와 독자 사이의 지적 격차가 가장 큰 시기이기도 했지만, 독자들이 필자를 가장 사랑하고 동경했던 시기이기도 했다. 지식인이 매우 희소했지만 오히려 지식인과 대중의 거리가 가장 가까운 시기이기도 했다.
  이러한 지식인들의 글을 가장 전투적으로 수용하는 매체 또한 물론 신문이었다. 불특정 다수의 타인의 시선이 개인의 행동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게 된 것에는 신문의 영향력이 절대적으로 컸다. 신문은 악행을 일삼는 자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기 시작했다. 신문의 감시와 비판이 두려워 언론을 억압하려고 했던 고위급 관료들과 일본 식민지 당국. 한국 언론의 힘에 대해서는 이토 히로부미도 두려워하고 불쾌하게 여길 정도였다.
  실제 발행부수의 양적인 판매고는 중요치 않거나 절대적인 척도가 아니다. 작은 촌락 공동체의 지인들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만으로 충분했던 시대에서 이제는 ‘내가 모르는 불특정 다수의 시선’에 행동을 제약 받게 된 것이다.
  또한 이 시기는 최초의 미디어 전쟁의 기원으로 읽힐 수도 있다. 일본의 식민화와 한국의 문명화를 위한 선결과제 중 하나는 한국의 대외 이미지를 어떻게 조정하느냐하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일본 언론과 한국 언론은 한국의 과거와 현재의 이미지가 어떻게 비춰지는지에 대해 극도로 민감했다. 일본의 식민지 당국과 한국의 민족주의자들은 모두 한반도의 정치적 미래를 놓고 다투는 정치적 경쟁에서 한국의 문화적 표상이 어떻게 드러나는가가 결정적인 문제임을 너무도 잘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일본 식민지 당국과 한국의 민족주의자들은 모두 그들 각자의 정치적 목적을 뒷받침하는 한국 사회의 이미지를 유포하기 위해 엄청난 에너지를 소비했다.” 일본이 식민화를 완성하기 위해 수행했던 두 가지 추상적 전쟁. 그것은 언론 전쟁과 역사 전쟁이었다. 언론을 통제함으로써 한국에 대한 일본의 대외정책의 합리적이고 시혜적인 이미지를 메이크업하는 것, 역사를 통제함으로써 한국의 과거사 자체가 일본의 전유물이었음을 주장하고 유포하는 것. 이 두 가지 추상적 전쟁이야말로 경제적 식민화와 정치적 식민화보다도 어렵고 전면적인 전쟁이었다. 피식민지의 역사를 전유하는 것이야말로, 한국의 과거를 통제하는 것이야말로 식민주의 승리의 또 다른 관건이었다. “식민주의가 한국을 지배하는 가장 강력한 방법은 한국의 과거사가 정치적인 목적에 의해 동원될 수 있는 길을 통제하는 것이었다.”


식민주의와 민족주의의 동일성

이 책의 저자 슈미드의 기본 전략 중 하나는 식민주의와 민족주의의 본질적 동일성을 파헤치는 것이다. 식민주의자와 민족주의자는 ‘문명 개화’를 공통분모로 내세우고 있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동질적이었다는 것이다. 한반도의 주권을 둘러싼 정치적 갈등은 물론 식민화된 집단과 식민화하려는 집단 사이에서 발생했지만, 이러한 관점은 서로 반대되는 성격만 집중 조명하고 식민주의자와 민족주의자들 사이의 공명은 잘 드러내지 않는 경향이 있다. 사실 식민주의와 민족주의 사이에는 많은 교류와 공통된 입장이 있었다. 두 집단 모두 문명개화를 중심으로 정치적 계획을 수립했기 때문이다. 식민주의의 진정한 힘은 단순히 지배력이나 무력이 아니라 대상 민족의 자기 이해(self-knowledge)를 근원적으로 되새김질하게 만드는 것이다. “실제로 식민주의의 힘은 단순히 복종하게 만드는 무능력이라기보다는 당시 한국의 경우에서처럼 자신들의 국가에 대해 자각하게 만드는 더 깊고 오래 가는 능력이라고 볼 수 있다”
  민족주의 언론은 국권을 보호하고자 했지만, 1905년 이후 자신들이 그렇게 열심히 전달하려는 지식이 사실상 한반도의 식민지화를 부추길지도 모른다는 딜레마에 부딪히게 된다. 문명개화는 만병통치약처럼 제시되었지만 문명에 중독된 신체는 문명 자체에 대한 비판적 사유를 할 수 없었다. 그들의 유일한 무기인 문명개화가 그들의 민족 공동체를 파괴하는 덫이 될 수도 있다는 자각이야말로 당시의 문필가들이 처한 딜레마였다.
  슈미드는 식민주의의 잔혹성과 반식민주의의 무지성을 동시에 보여준다. 식민주의는 식민주의대로 잔인하고 냉혹했지만, 반식민주의는 반식민주의대로 맹목적이고 무지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슈미드의 기획은 어쩌면 민족주의와 식민주의가 쌍생아임을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일본의 식민 담론이 한국 민족주의자들의 자기 인식을 형성할 수 있었듯이, 일본 식민주의자들의 글쓰기는 또한 수많은 서구인들의 글쓰기 정보의 원천이기도 했다. 한국에 대한 지식, 그것이 한반도 내부에서 형성된 것이든 일본에서 형성된 것이든 서양에서 형성된 것이든, 그것은 뿌리 깊은 식민주의적 정치학에 의해 형성된 것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더 중요한 것은, 식민주의와 민족주의의 본질적 친연성 자체를 밝히기에 앞서, 100년 전의 사람들이 총체적 내우외환의 압력 속에서 어떻게 ‘자기’를 아니, ‘자기’ 이전에 우선 ‘우리’를 발견해야 했는지를, 그 절박성을 이해하는 것이 아닐까. 감히 비교의 대상에 오를 수도 없었던 일본이 중국과 비교되고, 더구나 중국을 넘어서는 존재로 규정되는 것. 지금까지 하늘로 믿어왔던 존재가 땅으로 추락하고 땅 밑에 존재하던 존재가 천상의 존재로 격상되는 충격적 경험. 그것이 제국의 틈바구니에서 한국인들이 느꼈던 혼란과 절망의 실체였다. 일본은 신지식의 메타포였고 중국은 구지식의 메타포였으며, 일본은 서구의 성공적 이미테이션이고 중국은 모방의 실패로 인한 절망의 메타포였다. 중국은 늘 최악의 상황을 은유하는 존재로 바뀌어 있었다. 우리가 일본을 따라가지 못한다면, 적어도 문명국가의 대열에 오를 수 없다면, 우리는 중국처럼 비참한 상황에 빠지게 되리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었다. 이러한 ‘자아’를 둘러싼 타자의 재배치야말로 근대적 자기인식의 핵심적 풍경이었다. 슈미드는 100년 전의 한국인들의 인식의 배치가 바뀔 수 있었던 요인을 이렇게 분석한다. “청일전쟁은 중국과 일본의 비교연구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일본은 더 이상 유럽이나 미국에 비해 뒤쳐진 국가가 아니었으며 그 명성과 능력은 유럽과 미국에 견줄 수 있었다. 서양이 ‘인정한’ 일본은 ‘다시는 뒤떨어지지 않을 나라였다.’”


자기 인식의 새로운 가능성

개항에서 식민지시대를 거쳐 분단시대에 이르는 한국 민족주의의 역사는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한국 민족주의 발생의 제1라운드는 중화주의 해체를 통한 ‘중국’의 영향력으로부터의 탈주였다. 민족주의 심화의 제2라운드, 그것은 일제 식민주의로부터의 탈주였다. 나아가 여전히 현재적인 민족주의 지속의 제3라운드는 한국전쟁으로 인한 분단 구도의 해체 과제다. 선거 때만 되면 ‘북풍’이 불어 낡디 낡은 레드카드를 들이미는 보수정치와 언론의 시대, ‘국가 안보’를 위해서는 모든 비판적 사유를 기꺼이 마비시키는 지식의 불모성. 이것은 민족주의 지속의 제3라운드, 분단 체제가 낳은 민족주의의 영속화 전략에 기인한다.
  여전히 역사의 유일한 주인공, 유일한 주체는 ‘민족’이라는 점.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새로운 역사적 상상력을 발휘할 수 없게 하는 것이 아닐까. 이 자기인식의 강력한 기원을 형성한 것이 바로 한국의 근대 전환기다. 분단체제는 민족이라는 개념의 정신성과 정서적 측면, 그 극도의 추상성을 더욱 심화시킨다. 실제로 민족이라는 개념이 여전히 한국에서 의미를 가지는 것은 분단 체제에서 통합된 국가를 상상해야 하는 상황에 기인한 바 크다. ‘자아’를 발견하기도 전에 성급하게 ‘우리’부터 창조하고 추슬러야 했던 편협한 현실 감각. 그것이 민족을 ‘상상’했지만 ‘현실’을 명확하게 인지할 능력은 부족했던, 역사의 비극이 아니었을까. 

저자소개

앙드레 슈미드(Andre Schmid) (저자)
미국 콜롬비아 대학 역사학과 교수를 지냈으며, 현재 캐나다 토론토 대학 동아시아 연구 분과의 부교수. 그의 관심은 20세기 초 한국의 민족주의 운동뿐 아니라 한국전쟁 이후 한국 사회의 사회문화적 지형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뻗어 있다. 《제국 그 사이의 한국 1895~1919(Korea Between Empires 1895~1919》은 19세기 말 20세기 초 한국의 역사에 초점을 맞추면서 어떻게 근대적 지식의 개념과 상징이 창조되었는지, 나아가 어떻게 근대 초기의 지식이 민족적 정체성, 네이션-스테이트, 그리고 민족주의에 대한 한국인의 근원적 인식을 창조하는 기획으로 통합되었는지를 탐구한다. 《제국 그 사이의 한국 1895~1919(Korea Between Empires 1895~1919)》(Columbia University Press)은 아시아 연구 연합회의 존 휘트니 홀 상(the Association of Asian Studies’ John Whitney Hall award)을 받았다.
정여울 (역자)
1976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독문과를 졸업했으며, 같은 학교 대학원 국문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한신대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는 〈20세기 초 몽유양식의 담론적 특성 연구〉, 〈근대계몽기 민족담론의 경계와 그 균열: 기억되지 못한, 혹은 은폐된 ‘계몽의 외부’〉, 〈개화기 신문 독자투고란 연구-독립신문ㆍ대한매일신보ㆍ대한민보를 중심으로〉외 다수가 있다. 지은 책으로는 《아가씨, 대중문화의 숲에서 희망을 보다》가 있고, 함께 쓴 책으로는《국민국가의 정치적 상상력》 등이 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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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 서문
감사의 말

서론 어떤 기념비 이야기
01. ‘민족’이라는 새로운 ‘개념’
02. 문명과 동양
03. 식민주의와 역사
04. 민족의 경계

1장 문명의 강풍이 불어오다
05. 내우외환
06. 글로벌리즘과 내셔널리즘의 환상적 결합
07. 민족주의 지식인들
08. 민족의 눈과 귀

2장 탈중화와 동양의 재편
09. 중국의 강등
10. 진정한 문화, 순수한 정체성
11. 민족주의의 언어
12. 국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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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리뷰1

책이 어려워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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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경진 | 2008.01.17
책의 표지만 봐도 어려워 보입니다 ㅋ 우리의 역사를 잘 알수 잇겟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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